[우치 기행] 만화를 찢고 나온 피그말리온의 조각상들

<우치 MS1 미술관>, 아방가르드 작품들의 시작

by 흑투리
주의! 글에 개제한 일부 작품들 중에는 다소 선정적이거나 특정 신체 부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위 사실에 먼저 유념하며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해당 미술관은 2025년 3월 29일에 열린 전시관을 토대로 하는 내용이며, 현재는 위와 같은 전시관이 열리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피그말리온: 현실의 여성에게 환멸을 느껴 자기 이상형을 직접 조각하고, 여신의 힘으로 인간이 된 조각상과 결혼해 자식까지 둔 신화 속 키프로스 사람



피그말리온, 어딘가 익숙한 이름 같지 않나? 그렇다! 여러분(혹은 여러분의 아들딸들)이 어렸을 때 그렇게도 즐겨 읽던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 자기가 만든 조각상과 결혼한 조각가이다! 본인이 직접 '갈라테아'라는 동상을 만들어놓고 그 동상과 사랑에 빠지다가, 실제로 그 동상이 인간이 되어 버린 덕후 로망의 끝판왕! 그야말로 '환상 속의 공주님과 이어져버린 로맨스 판타지의 남주'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표현이 있을까 싶을 만큼, 운 스탯이 A+++은 되지 않을까 싶은 남자이다.



그런데 투리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갈라테아'라는 동상이 엄청 아름다웠다는데, 그게 인간으로 변한다고 똑같이 아름답게 보일까? 예를 들면 일본 애니메이션만 해도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각색이다. 그 인물들이 아무리 2D에서 이쁘거나 잘생겨 보여도, 그 그림체가 그대로 실사화되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재미있게도 본인과 같은 발상을 가졌던 예술가가 있었는지, 그 호기심을 담은 작품들을 오늘 설명할 이 미술관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어떤지 궁금하신가? 찍은 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이 글에서 그 대표적인 예시들을 선보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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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우치의 거리를 구경한 다음 느긋하게 일어난 둘째 날 점심. 이 날은 여러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렇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일단 괜찮은 식사 한 끼를 먼저 해야 미술관 감상에 집중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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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한 식당에서 피에로기 세트를 맛있게 먹었지만, 막판에 메뉴판의 가격이 세금이 포함되지 않은 가격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는 배신감이 느껴졌다! 기분이 좀 안 좋아졌지만, 그렇다고 일정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첫 번째 목적지는 방금 투리가 말한 현대미술관으로, 간단히 말하면 <우치 MS1 현대미술관>이다.



미술관의 정식 명칭은 'Museum of Art in Łódź MS1'으로, 'Muzeum Sztuki, the primary ms1 branch'라도 한다. 'Sztuki'라는 말은 폴란드어로 '예술'의 복수형으로, 이름을 풀이하면 '우치 예술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예술 박물관은 정확히 3개의 건물들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MS1, MS2, Herbest Palace Museum이라고 불린다. 이번 글에서는 그중 MS1 박물관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20250329_123116.jpg MS1 박물관의 정면 모습. 이 구도로 찍어서 그렇지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궁전 같은 느낌이 든다.



우치의 Gdańska 43번지에 위치해 있는 해당 미술관은 네오르네상스풍 궁전을 개조해 만든 초기 현대미술관이다. 이 건물의 원래 주인은 모리시 포즈난스키(Maurycy Poznański)라는 19세기 사업가였는데, 20세기에 아방가르드 그룹(a.r. group)이 본인들의 아방가르드 미술 컬렉션을 위의 장소에 맡기면서 미술관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20250329_123356.jpg 당시 매표소 근처 전광판



참고로 아방가르드가 뭐냐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방가르드(Avant-garde)란 예술이나 문화, 사회에서 실험적이거나 급진적인 작업과 작가 모두를 아우르는 말이다. 혹은 전위 예술(前衛藝術)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술로 따지면 다다이즘부터 시작해서 입체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 또 다양한 분야로 나뉘는 것 같은데, 그냥 기존 규범이나 전통을 벗어난 미술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KakaoTalk_20250905_191001652.jpg 표를 사면 표에 위와 같은 도장을 찍어준다. 저걸 들고 나머지 두 박물관에 가면 다시 결제를 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서 아방그라드 그룹 소속 예술가 중 한 명인 브와디스와프 스트르제민스키(Władysław Strzemiński)가 1940년대에 네오플라스틱 룸(Neoplastic Room)을 설치하면서 해당 미술관은 작품과 공간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실험 공간이 된다.



ms1.png 네오플라스틱 전시관. 출처: 위키백과



초기에 전시되던 상당수의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나중에 MS2 박물관으로 옮겨졌지만, 위의 네오플라스틱 룸은 여전히 MS1 박물관에 남는다. 그래도 한때 우치 현대미술관의 뿌리이자 상징이었던 공간이었기 때문에, 가장 핵심 되는 공간을 그대로 둠으로써 MS1의 기존 정체성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슬픈 소식. 투리가 갔을 때에는 위의 네오플라스틱 전시관을 보지 못했다.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인가, 열려 있는 곳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위의 사진과 같은 곳은 봤던 기억이 없다. 어쩌면 전시관 자체가 아예 리모델링해서 투리 본인이 못 알아보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초반에 말했듯 이 미술관에는 투리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전시관들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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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투리가 발을 들인 곳은 위 사진들과 같이 여러 난잡한(?) 모습을 한 작품들. 역시 현대미술관은 평균 수준도 쉽지 않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투리가 봤던 전시관의 상당수는 '아우라 로젠버그(Aura Rosenberg)'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된 것이었는데, 아우라 로젠버그는 미국 출신의 화가이다. 다만 현대미술관에 등장하는 분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전통적인 스타일의 화가가 아니고 여러 실험적인 기법을 활용하는 예술가이다. 어떤 기법을 쓰냐고? 그것은 아래의 작품들을 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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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pace Between Us'의 일부 장면, 2024



일단 위의 비디오 영상 작품부터 시작해 보자! 지금 보면 아우라의 작품들 중 '비디오 영상' 작품이 있다는 것부터가 일반 화가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위 비디오는 그녀가 다른 영화 제작자와 함께 공동으로 만든 작품인데, 작품 설명을 하려면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한때 뉴욕 월스트리트에 'Arturo Di Modica'라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Charging Bull'이라는 조각상을 게릴라 느낌으로 설치를 했는데, 이를 나중에 'Kristen Visbal'이라는 조각가가 그 앞에 허리를 손에 얹고 당당히 해당 조각상을 마주 보는 소녀 조각상을 설치한다. 그러자 Di Modica는 자신의 작품의 의미가 왜곡했다고 분노한다. 그 소 조각상의 의미가 원래 의도인 힘찬 느낌을 자아내는 희망의 상징에서 여성을 위협하는 권력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한동안 이 문제로 논쟁이 일었는데, 결국 자리를 옮기는 쪽은 'Charging Bull'이 되었다고 한다.



아우라는 위 사건을 통해 두 동상 사이의 공간(the space between us)을 강하고 싶었는지, 그 공간을 욕망, 무죄, 야수성 등의 신화적 풍경으로 생각하며 그것을 비디오 작품으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어쩐지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 봤을 때 아이가 황소에게서 도망치고, 무슨 트라우마를 언급하는 것 같은 내용들이 비디오 안에서 계속 나오더라. 이처럼 아우라는 신화에 관한 내용을 현대적 방식으로 재구성해 만드는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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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그 의미의 연장선상에서인가. 초반에 전시된 그림 작품들에도 황소가 그려진 작품들이 정말로 많이 보였다. 그녀의 식대로 해석하면 황소권력과 공격성, 혹은 야수성과 본능이다. 그런 황소는 신화적인 내용과 맞물려 일종의 커다란 도전처럼 느껴진다. 그에 반해 그에 맞서는 소녀도전적 힘이다. 두 대상 사이에는 어떠한 기나긴 선이 있는 듯한 공간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소녀는 단순히 여성으로서의 인권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황소라는 신화 속의 시련과 시험대를 헤쳐나가는 인류의 상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기사를 보니 뉴욕에 있는 그 소녀 동상에 과하게 페미니스트적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부디 투리가 생각한 것처럼 아우라의 작품들이 소녀, 소년을 넘어 인간 전체의 극복 서사를 포괄하는 메시지로 확장되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렇게 소가 많이 등장하는 작품도 있지만,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인간' 작품이다. 그것도 아우라식 갈라테아 상상 편 버전 말이다. 몇 개만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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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반대쪽 방향에서 바라보았을 때의 사진



짜잔! 어떤가? 저 두 사진이 모두 하나의 작품을 지칭하는 거라고 말하면 믿겠는가? 사진으로만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겠지만 사실이다! 아우라는 고전 그리스 로마 조각과 현대 배우들이 동일한 포즈를 일부러 교차시키는 식으로 위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을 '흑백 렌티큘러 프린트'라고 하는데, 투리가 가장 신선하게 보았던 전시관의 작품들이 이런 작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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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들은 모두 그녀가 촬영한 신화 속의 조각상 사진과 동일한 포즈를 취한 현대 배우들관능적인 이미지를 매끄럽게 번갈아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위 사진의 작품도 작아서 잘 안 보이는 거지, 조금만 더 확대되었다면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시청 등급이 급격하게 올랐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하지만 같은 대상이라도 환경에 따라 맥락이 달라지듯, 박물관에 들어온다면 의미가 있는 어떠한 관능적인 이미지도 순수한 미적 대상으로 승화된다. 표현이 다소 노골적이긴 하지만, 박물관 안의 야한 요소는 공식적으로 허락한 유일한 합법적인 19금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저런 작품들을 볼 때 감상자는 미의 기준, 성별, 고귀함, 관능성순수한 목적으로 위의 요소들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절대, 절대 사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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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에는 헤라클레스와 아프로디테, 프로메테우스, 헤라클레스의 머리 등 여러 신화 속 인물들이 대상이라고 한다. 투리 생각에는 위 사진의 남자의 모습은 프로메테우스이지 않을까다. 프로메테우스, 그는 불을 훔친 죄로 제우스에게 잡혀서 매일 독수리에게 간에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위 사진의 독수리 역시 남자에게 맹렬하게 돌진해 무언가를 쪼아 먹을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왼쪽의 여성은 남자를 위로하는 천사, 아래의 쓰러진 듯한 인물은 남자에게 구원받은 인물이 아닐까 싶다. 혹시나 투리가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으니 위 사진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은 정정 댓글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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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



그나저나 투리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동상과 실제 인물의 싱크로율이 정말로 잘 맞았다는 사실이다. 비록 신화 속 인물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만일 동상이 거부감이 안 드는 선에서 인간화한다면 이런 식으로 바뀔 수 있겠구나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괜찮은 것 같지 않은가? 적절히 어울리는 듯한 남유럽 인간들의 모습. 작가도 3D 실사화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기 위해 고생했을 걸 생각하면 섭외를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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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우라의 전반적인 작품 전시회를 훑어보면서 상당수의 작품들을 공개해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인간'이라는 특징이 이 전시회 속에 많이 강조되었던 것 같았다. 특히나 방향에 따라 한 작품이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는 점은 투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심지어 본인이 봤던 인간의 얼굴들도 피그말리온이 만들었다면 진짜로 그런 식으로 인간화했을 모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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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위쪽에는 위의 사진들처럼 사무실과 휴식 공간, 도서관도 있었다. 투리가 갔던 날은 토요일이라 안 열린 것 같았지만.



이상이 이번 우치 MS1 현대미술관을 돌아다녔던 흑투리의 소감이었다. 지금 보면 다른 글들에 비해 보여준 사진들이 적은 편인데, 실제로 MS1 미술관 하나만 봤을 때는 다른 곳들보다 양이 적었다. 거의 지난번에 소개했던 크라쿠프의 'MOCAK 미술관'과 비슷한 크기라고 해야 할까. 물론 투리가 올린 사진들이 전부는 아니고, 더 많은 작품들이 있기는 했지만, 하나만 방문했을 때는 확실히 아쉽긴 했다. 그럼에도 투리에게 이 미술관이 의미가 있었던 이유를 묻는다면, 이 미술관 덕분에 현대미술관의 매력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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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지만 우치의 본격적인 현대미술관 탐방은 '우치 MS2 미술관'부터다. 어차피 이 글은 상설전시관이 아니기도 하고, 진정한 아방가르드 작품들은 대부분 MS2에 포진되어 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작품들은 그저 맛보기로 생각해 달라. 이상이 '우치 MS1 미술관'의 'Statues Also Fall in Love' 전시관에 대한 흑투리의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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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투리의 최애 '흑백 렌티큘러 프린트'는 위의 작품! 투리가 맞다면 저 작품은 '다비드상'인데, 실사화된 인물이 세상에, 중동 사람이 아니라 극동아시아 사람의 외모다. 그런데 저 실사화된 인물의 얼굴과 몸매, 너무 잘생기지 않았나? 투리의 취향저격이라서 조금 쑥스럽지만 그래도 여러분의 즐거운 감상(눈호강)을 위해 이렇게 한 작품 더 올려본다.

(저분 정도면 충분히 장동건, 차은우 님이랑 해볼 만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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