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속 칼럼>

-’ 다정한 노동’이 필요한 시대-

by avivaya

[ 조세이 탄광 수몰 사건은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해저탄광에 바닷물이 들어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이 숨진 참사다. 이 비극을 잊지 않고 오랫동안 한국 유족들과 교류를 이어왔고, 추도비도 세웠다.] 2026/1월 14일, 한겨레 27면 사설

어쩌면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던 조선인‘ 에게 죽음은 오히려 행복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비록 미물처럼 무참한 죽음이었겠지만 그 편이 나았을 것 같다. ‘가혹한 노동‘은 그야말로 인간으로서 참아낼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의 연속이 무한정 반복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다. <가혹하다>와 <시달리다>와 같은 수동적인 단어는 <노동>과 결코 어울려서는 안 될 말인데 말이다 그것이 뜻하는 의미는 ’몹시 모질고 혹독하여 심하다’, ’ 가치 없다 ‘, ‘너무 지나치다 ‘ 등으로 법과 조건과 대우와 현실 등이 매우 힘들고 매정할 때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분히 수동적인 타인에 의한 강요와 억압이 섞여 있는 참혹함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이라는 신성한 삶의 여정 앞에 그렇게 비상식적인 수식어와 짝을 이루게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노동은 긍정적이고 공평하고 균형감각이 뛰어난 속성을 갖고 살아야 할 주체적 삶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겁하고 비참하고 부당한 요구 사항은 <노동>에서 반드시 거둬내야 할 불순물이다. <노동>에 대한 가치를 낮게 측정하고 왜곡된 시선을 갖는 것은 내 삶을 향해 독이 묻은 화살을 쏘는 행위와 같다. <화살>이 나를 향하게 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노동> 이 나를 공격하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혹하게 시달리는 노동‘은 우리 삶에서 끝을 내야 할 것이다. 새 시대에 필요한 <다정한 노동>으로 변화하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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