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을 찾아 나서다-
“‘후덕죽 사고’ 열풍이 불고 있다. 자신이 잘할 수 있어도 다른 사람이 하겠다고 하면 양보하고 믿어주는 대인배적 사고, 조금 무례한 일을 당해도 팀 전체를 위한 것이라면 이해하는 팀플레이적 사고, 자기 자리를 뺏은 사람이라도 리더로 인정하고 높여주는 숨은 일인자적 사고, 최후엔 능력으로 인정받는 1등 인재감적 사고 등을 뜻한다.” (26-1-12 한겨레 26면, 조혜정 디지털뉴스팀 기자)
오늘은 ‘사고’하는 태도의 칼을 들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자. <사고>라는 단어는 ‘1) 생각하고 궁리하다. 지식을 사용하여 마음의 작용을 하다. 이에 의하여 문제를 해결하다. 인간의 이성 작용을 하다. 2) 두루 생각하다. 돌이켜 생각하다. 3) 자세히 생각하고 조사하다.‘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나에게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사고를 위해 생각하기보다는 암기해서 답하고 아는 체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가끔 명언 같은 문장으로 마음의 작용을 하긴 한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식견이 좁고 자세히 조사하는 집념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사고> 와는 동떨어진 인간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사고> 하는 것을 회피해 왔던 것 같다. 사고하는 데 재료가 되는 지식이 ‘성찰과 반성‘ 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서는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를 한다는 것은 긍정적 효과가 큰 데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정당 간 충돌처럼 반대쪽 세력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 나에게도. 분명 <사고력>에 길들여지다 보면 ‘후덕죽 사고’는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그것이 내 삶을 호위호식하고 화려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당장 체감할 수 있는 효과가 없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검소하고 겸손한 삶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인내와 숙성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능력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순간까지 지난한 과정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 후덕죽 셰프’처럼 77세까지 매일 매 순간 <사고> 해야 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는 성찰과 반성을 성실하게 했을 테고 매일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갔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생각하는 힘을 믿었고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영양분이다. 결핍된 영양소는 반드시 채워 넣어야 한다. 내게 적확한 영양제가 이제 막 출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