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속 칼럼>

-걱정거리와 문젯거리-

by avivaya

“케이자형 회복 케이자형 성장, 즉 양극화를 동반한 성장은 이제 우리 경제의 구조적 양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듯하다.” (2026-1/23, 한겨레 23면 아침햇발, 안선희)

“쇼트폼 알고리즘은 진실이나 맥락보다 ‘순간적 자극’을 최우선한다. 짧고 강렬한 연상에 뇌가 길들여질수록, 인내심과 문해력을 요하는 뉴스는 ‘지루하고 불편한 소음‘으로 전락한다. “ (2026-1/23, 한겨레 23면 세상 읽기, 홍원식)

‘걱정’의 사전적 의미는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이라는 명사에 ‘거리‘(걱정이 되는 조건이나 일)라는 명사가 합해진 합성 명사이다. ‘걱정거리‘라는 말에서는 인간다운 정이 느껴지고 가까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리고 걱정은 나의 의지로 충분히 존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묻어난다. 그에 비해 ‘문젯거리‘에서 ‘문제’의 사전적 의미는 “해답을 요구하는 물음”, ”논쟁, 논의, 연구 따위의 대상이 되는 것“, “해결하기 어렵거나 난처한 대상”. “귀찮은 일이나 말썽” 등이 있고 전자와 마찬가지로 ’ 거리‘가 붙었지만 ‘걱정거리‘보다 부정적 이미지가 짙다. 또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대상이나 집단을 화자 자신보다 낮잡아 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문제로 낙점된 원인에는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조용한 해소와 해결은 어림도 없다. 나는 나의 인생을 ’ 걱정’의 시선보다는 ‘문제’ 거리로 취급한다. 뜻한 바를 이룰 리 없고 희망과 행복이라곤 점만큼도 없을 테니 나는 결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 생각한다, 게다가 내 문제이지만 풀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방치하면서 어쩌다 흘러드는 도움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도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인생에서 내 깃발을 신나게 흔들며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은 케이자 성장 구조에 맞춰서 성공해 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나에게 더 큰 골칫거리들을 잔뜩 생성하고 말 것이다. 내 인생에게 더는 난해한 문제를 던져줄 수는 없다. 그리고 괜한 걱정으로 내면을 심란하게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고 받아 든 시험지에 집중해야 한다. 해답을 찾기 위해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문제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금세 답을 내놓을 수 없다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것은 내 인생을 지루하고 불편한 소음 취급을 하는 것과 같다. 알고리즘처럼 순간적 쾌락만을 쫓아다닐 수는 없다. 짧고 강렬한 즐거움만으로 인생을 채울 수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매일 연속되고 마주하게 되는 일상을 상황과 맥락에 맞게 말하고 행동하는 지성과 인내하는 태도가 나를 만든다. 그래서 길고 소소한 행복에 길들여지는 뇌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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