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건

아들들아 참고로 건물, 땅, 금붙이는 아니란다

by 기리달

엄마가 되고 달리기에 빠져든 후, 아이들에게 꼭 물려주고 싶은 게 생겼다. 근사한 건물에서 꼬박꼬박 나오는 월세도, 금싸라기 땅문서도 아니다.(있는데 안 주는 게 아니라 없어서 못 주는 거지만) 바로 ‘운동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훗날 아이들이 들으면 ‘엄마, 우린 이런 걸 원한 게 아닌데요.’라고 정색할 수 있다. 운동을 싫어해서 멀리 두고 싶을 수도 있다. 사실 좋아하지 않고서는 가까이할 수 없기에 바란다고 쉽게 이뤄질 일이 아닌 것도 안다.


미취학 아동 둘을 키우다 보니 “쟤 왜 저러지”를 입에 달고 산다. ‘얘들은 왜 엄마 마음을 몰라줄까’ 하다가도 ‘꼬맹이들이 엄마 마음을 어떻게 들여다볼 것이며, 그 마음을 안다고 그대로 따라준다고? 퍽이나!’라는 생각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다. 여기에 운동까지 바란다고? 지금 글을 쓰면서 조금은 마음을 비워야겠다고 실시간으로 깨닫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해 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어린 시절은 어땠지? 내가 어떻게 운동과 친해졌는지 되돌아봐야겠다.


딸이 멋진 경호원이 되길 바랐던 아빠 덕분에 9살 때부터 16살 때까지 8년 동안 태권도를 배웠다. 아빠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을 태권도장에 먼저 보내시고는 “여자도 자기 몸은 혼자 지킬 수 있어야 돼.” 하시며 몇 달 후에 같은 도장에 등록시켜 주셨다. 무술을 수련하는 것 외에 피구, 달리기, 줄넘기 등 생활 체육을 하는 시간이 곧 친구들과 노는 시간이었다. 항상 재밌고 즐거웠다. 이런저런 대회에 나가기 전까지는.


오래 배우면 언젠가는 따게 되는 검은 띠까지 받게 되었고, 어쩌다 시범단과 선수단까지 들어가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대회장에서 나는 연차만 쌓인 능력 없는 사원이었다. 겨루기 대회에 나갈 때마다 실컷 두들겨 맞고 오기 일쑤였다. 대회장에 있는 여자 화장실을 가면 ‘내가 남자화장실로 잘못 들어왔나?’ 착각할 정도로 여학생들의 머리는 짧게 쳐있었고, 눈빛은 이글거렸다. 치렁치렁한 긴 머리에 흐리멍덩한 눈빛의 나는 상대하기 만만한 선수였다. 딸내미가 대회에서 각종 발차기로 맞고 오는 건 모르셨겠지만, 운이 좋아 가끔 받아 온 메달에도 아빠는 무척 기뻐하셨다.


한참 맞고 다닐 때쯤 운동의 길은 좁고 험하다는 것을 체득하면서 이건 내 길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발차기로 제대로 맞으면 뼈도 아프다) 느꼈다. 길이 아니면 어떠랴, 그냥 즐기면 되지! 태권도 덕분에 8년 동안 주 5일, 하루 50분씩 운동하는 시간이 보장되었고, 운동은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애증이 섞인 어릴 적 태권도복은 아직도 옷장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괜스레 눈물이 났던 사춘기와 학업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던 시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보낼 수 있던 것도 운동 덕분이다. 밤마다 집 앞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농구, 줄넘기, 배드민턴, 달리기 등을 하며 땀과 같이 잡생각을 흘려보냈다.


곁에는 항상 엄마가 함께였다. 그 시절 젊었던 엄마는 쌩쌩하고 체력도 좋았다. 몸이 안 좋은 날은 딱 요만큼만, 아예 체력을 다 써서 지쳐버릴 때까지 운동하고 싶은 날은 또 그만큼 맞춰주셨다. 엄마는 훌륭한 운동메이트였고 때로는 코치, 라이벌, 응원하는 소녀팬 역할까지 충실히 해주었다. 아무래도 사춘기와 학업 스트레스의 특효약은 운동이 아니라 운동을 함께 해준 ‘엄마’ 덕분이다.


큰 재능도 없는데 8년이나 태권도 수강료를 아까워하지 않고 꾸준히 지원해 준 아빠, 그리고 사춘기 딸과 밤마다 기꺼이 함께 해준 엄마를 보며 자랐다. 부모님 덕분에 운동과 친해질 기회를 얻었고, 내겐 그 경험들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수만 가지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소중한 유산이 되었다.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았고, 덕분에 지금도 달리고 있으며, 달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채워 넣고 있으니 말이다.


영어테이프도 자주 들으면 귀에 익숙해지듯, 운동하는 엄마를 자주 보다 보면 운동과 심적으로라도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아이들에게 ‘일부러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오늘 아침에도 운동 갔다 왔어. 얼마 못 뛰었지만 그래도 뛰니까 개운하네.”, “엄마, 너희 등원하면 바로 운동하러 가려고. 잘 다녀올게. 아들들도 유치원 잘 다녀와~”


때로는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때 요긴하게 쓰인다. “엄마는 요즘 고민이 있어. 지금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데 속도가 안 나~ 치타처럼 못 달려서 조금 속상해. 근데 첫째는 요즘 고민 같은 거 없어?” “아, 나는 요즘 어린이집에서 영어, 한글 배우는 게 너무 힘들어. 선생님이 보고, 듣고, 따라 하라고 하시는데 해도 잘 안돼.” 엄마의 고민 같지도 않은 고민을 들으며 아이는 조금은 편안하게 자기의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아이들이 운동할 기회를 만들어 주고, 아이를 묵묵히 응원해 줄 수 있는 심신이 튼튼한 엄마가 되고 싶다. 아들들은 조만간 엄마의 체력을 따라잡겠지만 원하면 기꺼이 함께 달려줄 엄마가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달리기로 체력 적금을 붓고 있다.


꾸준히 즐기며 달리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도 자연스레 운동을 곁에 둘 수 있기를. 어렵겠지만 그래도 바라본다. 이게 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유산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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