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령 맞춰서~ 하나 둘 셋 넷!
초등학생 때 불린 수많은 별명 중에 ‘황비홍’이 있었다. 1990년대 홍콩의 유명한 액션 영화에 등장했던 황비홍의 날렵하고 우아한 무술실력을 닮았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나는 변발을 한 황비홍의 이마만 닮아있었다.
여름철 친구들과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종일 뛰어논 탓에 애매한 구릿빛으로 그을린 이마에서는 반들반들한 광이 났다. 머리를 바짝 묶고 다녀 숨김없이 드러난 이마를 보고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은 나를 ‘황비홍’ 같다며 놀리곤 했다.
일명 ‘이마만 황비홍’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체육선생님의 권유로 ‘육상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로 아침마다 교실 대신 운동장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등교하면 운동장에서 약 30분 정도 할당된 운동량을 채운 후에야 교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달리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고 친한 친구들까지 함께 했던 터라 처음에는 마냥 즐거웠다.
시간이 흐르자 매번 비슷하게 흘러가는 연습이 괜히 지루해졌고, 아침부터 땀 흘린 채로 하루를 보내는 것도 별로였다. 갈아입을 정도로 옷이 푹 젖는 건 아니지만 애매하게 찝찝한 정도의 운동량이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달렸다. 그 좋았던 달리기도 의무적으로 달리다 보니 재미가 시들해졌다.
어느 날은 꾀가 나서 실내화 주머니로 얼굴을 가린 채 친구 옆에 바짝 붙어서 등교하다가 육상부 코치님께 걸린 적도 많다. 코치님과 눈이 마주치고, 그의 ‘까닥까닥’ 손짓이면 운동장으로 냅다 뛰어가서 가방은 구령대에 내던지고 태연하게 연습에 합류했다. 실내화 주머니로 은폐하는 것이 실패하자, 화단에 심어진 화초 사이에 숨어서 한발 한발 이동했다. 결과는 뻔했다. 드넓은 어깨가 가녀린 화초에 가려질 리가 없었다. 나 같은 녀석들을 매번 귀신같이 발견하는 코치님이 신기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다는 엄마 말은 안 믿어도 코치님 말은 왠지 믿길 정도였으니까.
육상부에는 나보다 1살 많은 6학년 선배가 셋이 있었다.
키가 크고 달리기가 제일 빨랐던 선배 1. 평소 웃는 걸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항상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후배들에게 자세나 호흡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주며 은근히 챙겨주는 츤데레였다.
왜소한 체격에 날렵했던 선배 2. 축구부 남자애가 안경을 썼던 선배 2를 ‘안경잡이’라고 놀린 탓에 둘이 말싸움하는 걸 우연히 들었는데 욕을 찰지게 해서 속으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안경잡이’ 처지였기에 그녀의 신명 나는 욕설이 은근히 통쾌했다.
힘이 좋아 투포환을 했던 선배 3. 후배들에게 꽤 상냥했다. 분명히 살가웠는데 기억은 후배들을 째려본 표정만 남아있다.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육상부 시절을 여태 잊지 못했는지 굳이 멀리 떨어진 복도 끝에서 내 이름을 ‘상냥하게’ 불러가며 인사를 받아먹곤 했다. 정말 끝까지
당시 5학년과 6학년은 한 살 차이였지만 그 차이는 마치 백 한 살 같았다. 감히 6학년 앞에서 신나게 재잘거렸다간 “야. 시끄러워” 소리에 입을 다물어야 했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인사를 못하고 지나친 날이면 다음날 운동장에 일렬로 선 채로 “너희들 인사 똑바로 하고 다녀라. 응?” 하고 혼나곤 했다. 그들 앞에선 ‘입은 닫고, 시선은 땅으로’ 향해야 했다. 모름지기 달리다 보면 ‘입은 벌어지고, 시선은 앞으로’ 향해야 하는데 말이다.
초등학생 나름의 사회생활이었나 보다. 당시 우리에겐 진지하고 당연했다. 어느 누구도 선배에게 감히 대들지 않았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해도 뭐라고 하는 어른도 없었다. 선후배 간에 엄격한 질서가 존재했고 지키지 않으면 마음 편히 달릴 수가 없었다.
선배들 앞에서는 위축되고 얼어붙었지만, 달릴 때만큼은 당당하고 자유로웠다. 누가 뭐라고 중얼거렸던 뛰는 시간만큼은 힘차게 달렸다. 더 잘 달리고 싶었기에 선배가 달리는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뭐라도 가르쳐 주면 귀담아듣고 따라 하려 애썼다.
당시 나는 200m 단거리 주자였다. 오래 달리는 것보다는 짧게 달리는 게 자신 있었다. 멀리, 오래 뛰는 친구들을 보면서 감탄했지만 내 코가 석자기에 먼 거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시 열 두 살인 나에겐 흥미로운 건 단거리뿐, 장거리는 남일이었다. 그 아이가 23년 후에 42.195km를 뛰어내겠다고 상상이나 했을까?
* 이어서 <‘무급 가정부’ 엄마의 42.195km 장거리 (2)>도 게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