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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노을 Apr 03. 2024

스페인 돈 키호테를 찾아서

스페인 돈키호테를 찾아서 # 일상대여2

        어린 기사

                                                               

  신학기 어린이집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 신입생들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며 눈물을 보인다. 3살 된 여자아이를 어르고 달래던 교사가

 "다나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는 거야? 선생님도 엄마가 보고 싶어.' 라며 아이의 감정을 다독이며 우는 시늉을 하자

 "선생님도 엄마 보고 싶어? 내가 엄마 사주께."라며 선생님의 눈물을 닦아준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어린 기사를 보는 것 같다. 진정한 기사도 정신을 아이에게서 배운다. 불현듯 돈 키호테가 떠 오른다. 


 

 작년 늦가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소설 속 돈 키호테가 기사 작위를 받았다는 라만차주의 벤타 델 키호테 여관을 방문했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궂은 날씨에도 거리는 씻긴 지붕처럼 깨끗하고 청량했다. 창과 방패를 든 돈키호테 조형물이 우리를 반겼다. 앙상한 미치광이 노인의 모습을 상징한 조형물이었지만 꽤 강직해 보였고 듬직해 보였다. 어수선한 세상을 바로 잡고 부정과 비리를 척결하며 가난한 자의 편이 되고 싶어 하는 의지를 표현한 듯 단단한 철로 되어 있었다.




  그를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사람은 미켈 데 세르반테스다. 그는 스페인의 국민 작가로 셰익스피어와도 나란히 어깨를 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셰익스피어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인 두 거장이 같은 날 별이 된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돈 키호테는 햄릿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으로 오늘날에도 다양한 연극과 뮤지컬 발레 등으로 이상과 현실의 세계를 잇고 있다.

  세르반테스의 삶은 돈 키호테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젊은 시절 레판토해전에서 한쪽 팔을 잃었으며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오다 해적선에 의해 납치되었다. 해적에 의해 노예로 팔려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겨우 몸값을 마련해 지불하고 자유의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많은 세월이 흐른 후였으며 고향에서의 삶 역시 힘들고 가난한 삶이 지속된다. 돈 키호테의 전편을 펴낸 후 세르반테스가 유명한 작가가 되었을 때도 그는 가난한 삶이 계속된다. 결국 돈 키호테의 후편이 나오던 이듬해 그는 사망하게 된다. 그는 후편에서 누구도 돈 키호테를 살려내지 못하도록 돈키호테의 삶도 마감시킨다.

 “돈 키호테는 오직 나만을 위해 태어났으며, 나 역시 그를 위해 태어났다. 우리 둘만이 한 몸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누구도 이 용감한 기사의 행적을 다시 쓸 수 없을 것이다. 혹여 그런 생각을 하는 자를 알게 되면, 이제 무덤 속에서 편히 쉬고 있는 돈 키호테를 불러 낼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충고하라. 내 소원은 오직 기사도에 관한 엉터리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혐오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나의 돈 키호테 이야기로 이제 그런 책들은 모두 비틀거리며 쓰러지게 되리라. 안녕히.”



  세르반테스는 자기가 겪은 스페인의 영광과 쇠퇴를 돈 키호테에 모두 담았던 듯싶다. 기사도 정신은 스페인의 자랑이자 자신감이었다. 한때 군사적 문화와 연계한 기사 계급은 불가능이란 없을 것 같은 스페인의 번영을 상징했다. 군사 목적이 사라지고 귀족들의 친목 집단으로 몰락하게 된 기사 계급은 스페인의 쇠퇴와 함께 기사도 정신도 타락하게 된다.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라는 편력 기사를 통해 당시의 사회를 교묘하게 비판하며 신분에 차별 없고 남녀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돈 키호테가 수많은 기사 소설을 읽고 미쳐버리게 되는 장면과 하인이 그 책들을 불에 모두 태워버리는 장면은 의미가 깊다. 작가가 어떤 글을 담아야 하는지, 문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벤타 델 키호테 여관의 레스토랑에서 올리브를 곁들인 포도주를 맛보았다. 카스티야 라만차주의 더 넓은 올리브 농장을 지나온 탓인지 초록색의 올리브 열매가 상큼하고 시큼했다. 땅이 메마른 라만차주는 예로부터 바람을 이용한 풍차가 많았다. 바람이 많은 고원에 풍차를 건설해 라만차의 대 평원에 물을 공급했다.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한 콘수에 그라 풍차는 16세기경에 지어졌는데 아직도 그 모습을 언덕에서 찾을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하얀 양이 풀을 뜯는 것처럼 평화로워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거인의 모습처럼 위엄이 느껴진다. 풍차가 있는 언덕 아래 라만차의 평원은 감자와 올리브 평원이 지평선처럼 펼쳐진다. 몽골의 평원과는 다른 느낌이다. 병정처럼 줄을 지은 올리브 나무들은 영국 황실의 근위병 같고 금방이라도 창을 든 돈 키호테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 앙상한 말을 탄 돈 키호테와 판초가 나타날 것만 같다. 

  나의 눈빛은 이제 교실로 돌아온다. "엄마를 사주께" 라며 선생님의 목을 껴안는 아이를 받아 안으며

 “원장 선생님도 엄마 보고 싶어. 나도 엄마 사줘”라고 한다. 아이가 살며시 웃는다. 돈 키호테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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