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을 찾아서 # 일상대여 2
인디언을 찾아서
아메리칸 원주민인 나바호 부족은 자연을 신성한 존재라고 믿는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 없는 것이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나바호족 자치에 있는 엔텔로프 캐니언과 모뉴멘트 밸리를 보기 위해 차를 몰았다.
나바호족은 미국의 남서부 지역에 거주해 온 원주민 인디언 부족이다. 나바호족으로 등록된 인구는 30만 명이 된다. 미국 내에 있는 부족의 수는 565 부족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부족이 나바호 부족이다. 60%의 나바호인은 연방 정부에서 정해놓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나바호”란 푸에블로 인디언의 테와(Tewa) 언어로서 “들판”을 뜻한다. 나바호족은 6.25 전쟁 때 8백여 명이 참전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을 맞아 우리 정부도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방역 물품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앤텔로프는 양의 이름이다. 인디언이 양몰이를 하며 이동하다 한 마리를 잃어버렸는데 그 양을 찾아다니다 발견한 곳이 이 사암 협곡 엔텔로프 캐니언이다. 그래서 양의 이름을 따서 엔텔로프 캐니언이 되었다. 엔텔로프 캐니언은 원주민인 나바호족의 거주지에 있는데 이곳을 관람하기 위해서는 나바호족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나바호족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간 엔텔로프 캐니언은 강물이 오랜 시간 동안 사암을 깎아 형성된 지형으로 수려한 곡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특색이다. 엔텔로프 캐니언의 사진은 컴퓨터 바탕화면에서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태양 빛이 좁은 벽 사이로 스며들어 시간에 따라 다양한 색깔과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엔텔로프 캐니언은 사진작가들에겐 이미 널리 알려진 명소가 되었다. 겨우 한 명 정도 드나들 수 있는 좁은 벽 사이를 통과할 때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태양 빛을 마주하게 되는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태양 빛의 사암은 천국의 빛이 아닐까 할 정도로 오묘하다. 엔텔로프 캐니언이 있는 곳은 덩그러니 방문객을 위한 건물 하나만 있다. 우리나라 관광지 같으면 여러 가지 먹을 것을 파는 건물이나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으련만. 이곳은 주차장과 건물 하나만 있어 관광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주차장이라 해봐야 뜨거운 사막에 그냥 주차하면 된다. 대개의 미국 캐니언들은 이렇게 되어 있는데 자연을 최소한만 사용하고 있는 그대로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문화재를 보호하는 모습은 본보기가 된다. 우리는 엔텔로트 캐니언을 보고 모뉴먼트 밸리로 길을 잡았다.
모뉴먼트 밸리는 뷰트라고 하는 바위 산이 점재해 마치 기념비(모뉴먼트)가 줄지어 있는 경관을 나타내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뉴먼트 밸리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939년이다. 모뉴멘트 밸리는 존 포드 감독, 존 웨인이 주연한 ‘역마차’라는 서부영화를 통해 처음 등장하며 널리 알려졌다. 그 후 이곳은 수많은 영화 촬영지가 되었으며 지구 속 색다른 별로 인식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은 인디언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이자 나바호 인디언의 성지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자연유산이다. 아주 큰 바위산 세 개가 산처럼 솟아 있는데 그 옆에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너럭바위가 하나 더 있다. 오늘 숙소는 모뉴멘트 밸리(Monument Valley)에 있는 더 뷰 호텔이다.
더 뷰 호텔은 딸이 어렵게 예약한 장소라고 했다. 호텔은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 있는데 모뉴멘트 밸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호텔은 주변 바위나 흙 색깔과 동일한 연한 붉은색으로 지어졌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고 한 의도가 돋보인다. 저녁 9시가 넘어서자 서쪽 하늘에서는 노을이 짙어졌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붉은 노을이 점차 짙어졌는데 사막에 깔리는 노을은 화성의 노을을 떠올릴 만큼 이국적이었다. 붉은 기가 사라지고 어둠이 짙어진 하늘에서는 별이 총총 모습을 드러냈다. 사막의 별은 은하수도 보일 만큼 선명하다. 은하수 자락을 이불 삼아 우리는 모처럼 시차를 극복한 듯 잠을 깊이 잤다. 새벽 5시 30분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일출이 시작되고 있었다. 벙어리장갑 모양의 바위 뿌리에서 태양은 꿈틀거리듯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나는 태양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딘가에서 어느 곳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 인디언들이 떠올랐다. 나는 인디언처럼 고개를 숙였다. 잠시 그들의 삶에 동화되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