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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노을 Jul 05. 2024

샌프란시스코의 이별

샌프란 시스코의 이별 #2 일상대여2

샌프란시스코의 이별     

                                                           

   라스베이거스 해리 리드 국제공항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동하는 공항 안이다. LA와 라스베이거스에서 여러 날을 보내고 이제 샌프란시스코로 가기 위해 수속을 마쳤다. 공항 안 탑승 케이트 앞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찍은 사진들을 훑어보며 추억을 더듬고 있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한 남자가 있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케 하듯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하얀 얼굴에 난 짧은 턱수염이 서양인 특유의 매력을 발산하며 눈길을 끈다. 젊은 백인 남자다.     


   연푸른 커튼 빛이 나는 배낭 가방을 은빛 의자 아래에 기대놓고, 밝은 회색빛 진으로 가린 발목이 드러나 보이는 양말의 운동화 차림은 한번에 보아도 그가 키가 큰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요세미티 호수처럼 그윽한 눈은 누가 봐도 홀스슈 밴드의 푸른 강물처럼 단번에 빠져들게 한다. 한 손으로 능숙하게 휴대폰을 만지며 무심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는 그의 모습은 곁눈질하던 내 시선을 기어이 정면으로 끌어당기고 만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가 왜 홀로 여행을 하는 것일까?’

  자신이 잘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에겐 무심한, 자신의 일만 하는 그런 남자일 거라고 단정 짓자 내 심장은 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처럼 요동친다. 이 순간 젊어지게 하는 마법의 샘물이라도 있다면 당장이라도 들이키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눈짓으로라도 말을 걸어보고 싶은 것을 꾹 누른다. 영어라도 잘한다면 말이라도 붙여 볼 걸.

  작년 가을 스페인 여행길에도 똑같은 마음이 일었다. 스페인 남자들은 하나 같이 조각처럼 생겼고, 플라타너스 나무처럼 곧게 뻗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나이가 듦에도 마음은 늙지 않고 이십 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말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몸은 늙고 세월은 흘렀는데, 마음은 시간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저 막힘없는 사랑을 꿈꾸던 시절 20대에 남아 연륜이라는 것이 앞서가는 사랑을 다스릴 뿐, 짝사랑을 꿈꾸던 십 대처럼 마음속에서는 아직도 무작정 사랑이 인다. 혹자는 아직 여성성이 살아 있어 정상적인 감정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나잇값도 못하는 주책이라고 말하지만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리는 내가 아직은 싫지 않다. 주변을 기웃기웃하던 찰나에 탑승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안도의 한숨인지 아쉬움의 한숨인지 모를 숨을 내쉬며 그를 남겨둔 채 군중 사이로 줄을 서며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안 사람들은 조폭처럼 우락부락한 사람도 있고, 바지가 아랫배에 걸린 뚱뚱한 백인도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핸섬한 남자들도 보이고, 아프리카의 흑인처럼 깡마른 사람도 있다. 한국인은 아니나 중국인이나 일본인처럼 보이는 동양인도 더러 있고, 라스베이거스 밤거리의 짧은 옷차림을 그대로 걸친 여자도 보인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는 사람들 일 것이라 여기며 티켓에 적힌 좌석번호를 찾아 비행기 허리쯤에 앉는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한다.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솟아 오른 비행기가 채 균형을 잡기도 전 흔들리기 시작한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기류를 잘못 탄 것 같다. 얼마 전에도 뉴스에서 기류로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를 연일 보도했는데 설마 우리 비행기도 그런 것은 아니겠지라며 두려움에 손잡이를 힘껏 잡아본다. LA에서 샌프란시스코 가는 비행기는 국내선이라 크지 않아 기류를 만나면 심하게 흔들릴 것이라는 것을 듣고는 왔지만 막상 닥치니 나의 작은 비명에 보태 여기저기서 나지막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몇 번 더 잔 흔들림이 있더니 비행기가 기류를 빠져나왔는지 스무스하게 고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 비로소 긴장이 풀린다.

그때 의자와 의자 사이로 내 바로 앞에 앉은 남자가 보인다. 좀 전까지만 해도 내 심장을 심하게 흔들어 놓았던 무늬 없는 흰색 셔츠에 진을 입은 그 남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그가 비스듬히 고개를 옆으로 놓아 어깨 위에 내려놓는데 그 어깨의 주인은 아무리 보아도 곱슬머리에 수염이 있는 남자다. 그의 옆엔 분명 남자밖에 없다. 고개를 쑥 빼내 부끄럼을 무릅쓰고 보다가 다시 좁은 의자 틈 사이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번에는 그와 그 옆의 남자가 양손을 포개며 깍지를 낀다.

 “아아!”

  얼굴은 화끈거리고 가슴은 그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심하게 요동치는데 그가 ‘게이’ 일 것이라는 생각은 지울수가 없다. 분명 꿈일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눈을 깜빡이고 보아도 변함없는 한 쌍의 남자 연인이다.

  그러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는 게이의 천국이자 합법적인 결혼까지 허용한 나라가 아니던가. 다음 주 가 되면 (6월 마지막 주) 무지개색 깃발을 휘날리며 ‘게이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어쩌면 그는 벌써 결혼을 한 아내일지도 모른다. 나는 불륜을 저지른 사람처럼 내 마음을 접었다 폈다 하며 좌불안석이 되었다. 불안하며, 실망스러우며, 부러워하며, 등등 오만가지의 감정들이 뒤섞여 내 마음을 추스르지 못한 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은 미국 최초의 게이 정치인인 '하비 밀크'의 이름을 따 ‘하비 밀크 국제공항’으로 개명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내가 내린 공항은 그가 자랑스러워하는 게이 정치인의 이름을 딴 공항이자 그의 사랑을 인정해 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도시에서 유유히 그의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잡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나는 내 사랑의 결말이 이별이라는 아픔을 간직한채 공항을 빠져 나오며 여행의 애피타이즈로 치부했다.  내 사랑은 그렇게 샌프란 시스코에서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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