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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 노을 Jul 12. 2024

키스의 향기

키스의 향기 #3 일상대여2

키스의 향기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가 걸려있는 게티 센터를 찾았다. 게티 센터는 (Getty Center)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건물로, J. 폴 게티 미술관이 있다. 게티 재단이 운영하는 뮤지엄인데 백색의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가 건축한 것으로 현대건축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불린다. 


  지하 주차장에서 트램을 타고 미술관으로 이동하니 시원한 물줄기와 함께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이 펼쳐진다. 이곳은 입장료가 전액 무료다. 미국의 석유 사업가로 대부호였던 장 폴 케티가 기증한 재단으로 그가 살아생전 수집한 예술 작품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 13년에 걸쳐 1997년에 완공되었는데 장 폴 게티는 살아생전 이 건물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게티 재단에서 미국의 추상 미술가이자 건축가인 리처드 마이어에게 건축을 맡겼는데, 그는 하늘과 태양, 구름에 의해 계속 변화하는 자유로운 색 흰색으로 공간을 꾸몄다고 한다. 빛과 공간의 유희가 절묘해 여의도 공원 면적의 2배나 되는 공간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자연광을 갤러리 내부에 비추게 하고, 휴식과 전망을 연결한 구조는 아름다움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건축가의 의지를 돋보이게 한다. 실지로 미술관을 관람하는 내내 탁 트인 전망과 흐르는 물, 그리고 세련된 건물에 지루한 줄 몰랐다. 게티 건물 테라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LA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타모니카 해변과 고속도로 전망도 시시각각 즐길 수 있다. 

  나는 미술관에서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와 마네의 ‘봄’, 모네의‘해돋이’ 등 여러 작품을 보았다. 고흐의 ‘아이리스’ 앞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여 그림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 그림은 고흐가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그림으로 붓꽃의 일종인 보라색의 아이리스를 담았다. 달콤한 키스의 향기가 난다는 이 꽃의 꽃말은 ‘좋은 소식을 전해 주세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흐가 꽃말을 생각하며 그린 것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정신병원에서 아이리스에게서 나는 향긋한 향기를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끝내 아이리스와 같은 달콤한 키스의 향기를 느껴보지 못한 채 권총으로 자살하고 말았지만,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키스보다 더 진한 향기를 느낀다. 한쪽 귀를 잘라 버릴 정도로 예민했던 그가 후세에서는 추앙받는 화가가 되었으니 이 또한 아이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장 폴 게티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대부호였지만 자린고비처럼 돈을 무척 아끼는 사람이었다. 세탁비를 아끼기 위해 화장실에서 직접 빨래했다고 하며, 파티에 온 사람들이 집 전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공중전화를 이용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탈리아 로마 마피아에게 손자가 유괴되어 수십억의 돈을 요구했을 때도 순순히 타협하지 않았으며, 한번 구입한 옷은 낡고 해질 때까지 10년 넘게 입었다. 심지어는 런던에 거주하면서 물가가 비싸다는 이유로 물가가 저렴한 1시간 거리의 외곽지에 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예술품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는지 수많은 회화와 공예, 조각 작품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무료로 일반인들에게 공개했다고 하니, 그의 마음 어딘가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집념이 키스보다 더 진하게 베여있는 것 같다.

  나는 게티 센터에서 미술관을 둘러보고 백색의 건물을 주의 깊게 본 뒤 정원으로 향했다. 미술관과 건축에 덧붙여 게티 센터의 정원은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다. 게티의 정원은 로버트 어윈이 총괄하여 ‘오감 만족’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꽃의 미로이다. 나무와 꽃, 조경과 조각 작품들이 게티 센터의 자연경관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는 정원을 따라 산책하며 거인의 버섯처럼 생긴 꽃 모둠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영어로 된 이름이 있는 것 같았는데 정확한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으며 이름 없는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만 나는 그 신기하게 생긴 꽃의 버섯에 감동을 받았다. 그날은 그냥 아름다운 정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나는 게티 센터를 빠져나오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아름다운 게티 센터를 건축한 리처드 마이어는 성추행으로 조기 은퇴 하였으며, 장 폴 게티 또한 다섯 번이나 결혼하고 이혼을 했다. 자신의 석유회사는 그가 사망한 이후 재산 분쟁으로 유족에 의해 텍사코에 매각되었으며 그의 미술관에 걸려 있는 고흐는 귀가 잘린 채 총으로 자신의 가슴을 쏘아 생을 마감하였다. 그럼에도 게티 센터는 우리에게 꿈을 심어준다. LA 시내를 바라보며 ‘아이리스’와 같은 달콤한 키스의 향기를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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