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사람이 재미에 도전하기
틈(절리)
경주시 양남면 하서항에는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주상절리가 있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다양한 모양을 볼 수 있는데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먼 신생대 화산활동의 결과물들이다. 용암이 분출하고 식어가는 과정에서 수축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러한 틈 속에서 절리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많이 형성되는데 비해 이곳은 평평하게 형성되어 있어 지질학적 연구가치가 높다고 한다. 용암이 옆으로 번져 천천히 식으며 만들어진 모양일 것이라 추측한다.
화산활동은 별이 살아있음을 의미한다. 지구라는 별도 태초에 화산 활동을 통해 생명이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수분에 의해 굳어진 화산재 위에 씨앗이 날아와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용암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곳임을 시사한다. 지구는 자신의 몸속에 불보다 더 뜨거운 용암을 품고 있으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기회를 엿보고 있다. 바다의 출렁이는 물을 보니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뜨거운 지구를 식힐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주상절리가 바다 주변에 분포되어 있는 것도 바다의 힘 때문일 것이다. 바다는 그만큼 유익하고 거대하며 지구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바다도 중요하지만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 역시 제 몫을 다한다. 파도가 없는 무풍지대는 인간을 가장 외롭게 만든다. 바람이 없으면 모든 것은 정지되어 버린다.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 설 수도 없으며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무풍지대야말로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지대가 되는 것이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다. 봄빛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데도 고마움을 느낀다. 파도소리길을 따라 바닷길을 걷는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쓸며 바닷길을 걷노라니 군데군데 피어난 야생화가 몸을 흔든다. 우뚝 솟은 주상절리가 더욱 정겹다. 노부부의 주름에게서 이유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처럼 주상절리의 흔적들에게서 감탄사를 자아낸다. 칭송받아 마땅한 아름다움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순한 양처럼 무념무상을 나타내는 모습이지만 한때는 악마의 화염을 내뿜었으리라. 베수비오 화산이 하룻밤의 악몽이 되어 폼페이를 사라지게 만든 것처럼 이곳 역시 한때는 뜨거운 화염에 휩싸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험악한 힘을 쏟고 남은 흔적인데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고 신비할 수가 있을까. 한 세계를 파괴하고 새롭게 태어난 흔적 같다.
용암이 분출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식어 만들어지는 것이 틈이라고 한다면 이마의 주름 또한 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곗바늘처럼 자전과 공전을 거친 주름도 둘이 되고 셋이 되어 늘어날 것이다. 혼자였다가 짝을 만나 둘이 되고 아이를 낳아 셋이 되는 것처럼 그때마다 틈이 생기고 주름이 생겼다. 인생이 틈과 같은 것이라면 사람의 한평생이 어찌 용암보다 덜하다 하겠는가. 폼페이의 연인 화석을 보고 지독한 사랑을 짐작하듯 우리의 먼 훗날도 그리웠다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와 바람이 암석을 깍듯 마음도 다듬어줄 것이다. 그렇게 다듬다 보면 가슴에 담긴 용암 덩어리도 차게 식혀 평평하게 펴질지도 모르겠다.
파도소리가 폼페이의 도시처럼 시끌벅적하다. 극한의 순간에도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그들을 생각하며 마음의 균열을 다 잡는다. 한바탕 용암이 흘러간 것처럼 바람도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