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사람이 재미에 도전하기
어버이날에
어버이날을 맞이합니다. 대학생인 아들이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주네요.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카네이션 사이에 배춧잎 지폐를 꽂아 카네이션 돈 꽃바구니를 안깁니다. 기분이 참 묘하네요. 벌써 자식에게 선물을 받는 어버이가 되었나 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아버지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뇌출혈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벚꽃이 지던 어느 날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머니가 평생을 지내시던 집에서 제사를 모셨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모여 그간의 안부를 물으며 떠들자 평상시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던 어머니가 시끄럽다며 제삿밥도 못 드시겠다며 언니가 한마디 거들었지요. 어머니가 지금까지 살아계신다면 참 좋았을 것을. 사람의 목숨이 제 몸의 주인도 감당이 안 되니 신의 영역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어머니와 저는 친한 모녀지간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저는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으로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라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돌아가셨지요. 가족 중 누구도 내가 친자식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저는 친자식이 맞았던 게지요. 내가 그렇게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육 남매의 다섯 번째 딸로 태어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환경이었지요.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어머니입장에선 대학에 가겠다는 딸자식이 얼마나 힘에 겨웠을까요? 동네 어른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가정에서 딸자식 대학 교육을 한다고 손가락질하였다지요. 공부하지 말라며 책을 뺏어 아궁이에 집어넣는 어머니가 이해가 안 가 불에 탄 책을 꺼내며 나 또한 어머니를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릅니다. 친부모라면 이럴 수 없다며 어릴 때부터 새 옷 한 벌, 책가방 하나 새것으로 사준 적이 없는 어머니를 떠 올렸지요. 어머니의 여동생 이모님이 어머니를 만나러 올 때 나의 모자며 신발을 사다 주어 이모님이 나의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자식을 놓고 키우며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아갑니다. 자식이 원하는 걸 못 해주는 부모마음이 어떤지, 아버지가 안 계신 농촌 시골 가정에서 육 남매를 키워내며 살림을 꾸려나가기가 얼마나 힘이 드셨는지, 덕분에 나는 기를 쓰며 공부해야 했지요. 참 외로웠습니다. 어머니의 지지가 없는 그 외로움이 너무 커 어머니를 애써 내 어머니가 아닐 것이라 생각했나 봅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갔을 때 어머니는 튜브를 연결해 미음을 드시는 정도였지요. 그 모습을 외면하다가 어느 날 새벽 어머니가 생각나 요양병원을 찾았었지요. 어머니는 이미 말씀을 못하신 지 오래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아무 말 없이 그러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손을 놓고 집에 가려고 일어서자 어머니는 내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알았지요.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내 작은 손이 어머니에게 힘이 된다는 것을요. 얼른 병석에서 일어나 벚꽃 구경을 가자며 손을 놓고 나오는데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해인가 엄청 힘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산소를 찾았었지요. 어머니의 산소 앞에서 엉엉 울다 어머니에게 서운했던 말들을 쏟아부었지요.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바람만 한줄기 가지를 흔들고 갔지요. 힘들 때 엄마 산소를 찾는 걸 보니 엄마는 엄마인가 보다 하고 혼잣말을 했지요. 엄마는 죽어서도 살아서도 나의 엄마입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등진 나이보다는 훨씬 적은 나이 쉰 하고도 셋이 넘었습니다. 어버이날이 돌아왔지요. 이제는 어머니의 심정을 말하지 않아도 이해할 나이가 되었는가 봅니다. 만약 살아 계신다면 어머니에게 좀 더 잘해드릴 수 있을 텐데. 모든 자식이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듯 저 또한 늦은 후회를 해 봅니다. 제주도 여행 한 번 못 모시고 저는 분명 불효자가 맞습니다. 왜 그렇게 철이 없었던지. 왜 그렇게 빗장을 걸듯 마음 문을 닫고 살았는지.
나의 자식들도 늦은 나이에 후회하지 않도록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꽃바구니를 사 들고 오는 걸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부모는 부모라는 존재만으로도 귀하다는 것을 어버이날을 맞아 더욱 가슴에 새깁니다. 살아생전 어머니의 등 한번 긁어드리지 못한 내 부족한 마음을 탓하며 자식에게 나의 등을 긁어보라고 해야겠습니다. 나의 빈 등을 솔직하게 내밀어 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