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저녁 아주 지독한 사랑영화를 보았습니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전 생애를 내던지며 복수를 하였지요. 보는 내내 가슴이 시렸는데 한 밤을 자고 난 지금도 가슴 한쪽이 쿡 아픕니다. 저는 그 여인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충분히 공감하고도 넘쳐 저라도 분명 그렇게 할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도 영화 속 장면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해 머릿속엔 필름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이렇게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것은 처음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잠을 못 이루었지요. 마음을 들어 침대로 옮길 수도 없었습니다. 영화는 바로 '해어화'입니다. '해어화'는 기생을 달리 부르는 말입니다. 기생이란 예로부터 '말을 알아듣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 하였다고 합니다.
'말을 알아듣는 꽃' 정말 기막힌 표현이 아닐까요? 그 시대 기생은 여러분류로 나눌 수 있는데 사대부와 학식을 논할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 기생들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기생학교가 있어서 미모는 물론 춤과 노래실력까지 두루 갖추었다지요.
몇 년 전에 유치원 아이들에게 정가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어젯밤에는 주인공 한효주가 정가를 불렀는데 그 소리에 끌려 영화를 보게 되었지요. 정가는 전통 성악의 한 갈래로 민간의 성악곡이라고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국악 선생님으로부터 정가를 배웠었는데 처음엔 무척 어렸웠습니다. 우리나라 노래이긴 하지만 동요와는 다른 호흡과 박자를 가지고 있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빨리 습득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는 기생학교 대성 권번의 교육을 받은 예인이자 기생인 연희와 소율, 작곡가인 윤우와의 삼각관계 사랑이야기입니다. 윤우는 소율을 사랑했지만 연희의 목소리에 이끌러 소율의 단짝친구인 연희를 사랑하게 됩니다. 유명한 대중가요 작곡가였던 윤우가 '조선의 마음'이라는 노래를 부를 가수를 찾고 있었는데 때마침 연희의 목소리에 반해 '조선의 마음'을 주게 되지요. 결국 사랑했던 소율을 배신하고 연희와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도대체 사랑이란 왜 이렇게 물러 터진 것일까요? 줏대도 없고 인내도 없고 절개도 없습니다. 굳은 약속은 윤우와 연희의 키스 장면에서 재가 되듯 날아가고 소율은 처절한 복수를 결심하게 됩니다.
이쯤 해서 나는 사랑흉을 좀 봐야겠습니다. 왜 사랑은 흐르고 또 흘러버리는 것일까요? 사랑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사람인가요? 마음속 마음인가요? 그것도 아니면 바람처럼 아무곳이나 내키는 대로 내려앉는 것일까요? 먼저 사랑은 거짓이고 나중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은 어느 교과서에 나오는 대목인지? 복수의 사랑 소율의 것은 잘못된 사랑이고, 기차에 뛰어들어 사랑하는 연희의 죽음을 따라가는 윤우의 사랑은 절절한 사랑인가요? 아주 고약하고 파괴하는 것이 사랑의 뒷면입니다. 달의 뒷면처럼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있지요.
감옥에서 나온 윤우가 소율에게 찾아와 연희의 소식을 묻습니다. 소율은 말하지요.
" 오라버니, 내가 왜 경성 최고 권력자인 히라타 기요시한테 몸을 팔게 되었는지 그것을 물어보는 게 먼저지...?"
저는 이 대목에서 소율이의 마음이 내 마음까지 후벼 파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적절한 답변을 기대했으나 윤우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미운 사내입니다. '한번쯤 사랑했었노라' 그렇게 말할 줄 알았는데 윤우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집니다. 소율은 사랑했던 이 남자, 윤우가 써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윤우에게 작곡을 부탁합니다. 윤우는 사랑은 거짓말이라며 딱 거기까지라고 곳을 써 줍니다.
소율은 '사랑 거즛말이'라는 노래를 절규하듯 부릅니다.
사랑 거즛말이
사랑 거즛말이
님 날 사랑 거즛말이
꿈에 와 뵈단 말이 귀 더욱 거즛말이
날 같이 잠 아니 오면 어느 꿈에 뵈리오
훗날 소율은 방송국 PD가 자신의 노래를 칭찬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렇게 좋은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라며 자신이 부른 정가 스타일의 곡이 가장 아름다웠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해어화'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황진이의 별명이기도 하였다지요.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
사랑도 말을 알아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