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일상 대여 01화

참깨와 참기름

by 푸른 노을


깨와 참기름



시골텃밭에서 참깨 농사를 지었다. 남편이 참깨를 수확해 집으로 가져왔다. 베란다 가까이 보자기를 깔고 늘어놓으니 족히 한 말은 넘는다. 푸석한 밭에 물을 주며 잡초를 뽑아 가꾸더니 수확이 쏠쏠하다. 바람과 태풍에도 열매를 잃지 않았으니 인간과 자연의 합작품일 것이다.


추석이 다가오자 참기름을 짜기로 했다. 넉넉히 짜 서울 사는 동서들과 친척들에게도 한 병씩 나눠주자고 하니 남편도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나눠 줘 버리면 정작 자신에게는 얼마 남지 않을 터인데 계산 없이 내어주자는 마음이 새삼 고맙다.


참깨를 거실에 늘어놓은 지 여러 날이 지났다. 이유인즉 아직 마땅한 방앗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깨 농사를 지었다고 여기저기 자랑을 하였더니 지인들이 한 마디씩 했다. 좋은 참기름을 얻으려면 착한 방앗간을 가야 한다며 만나는 사람마다 조언을 하는 것이다. 착한 방앗간이란 속이지 않는 방앗간이다.


참기름은 중국산보다 국산이 고소하고 값이 나가기 때문에 방앗간에서도 은근슬쩍 바꿔치기를 한다고 했다. 중국산 깨를 국산 깨와 썩어 버리기도 하고, 기름을 짜고 난 후 국산 참기름을 중국산 참기름과 바꿔치기도 한다는 것이다. 참깨 품질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며 참기름의 양을 속이기도 하고 혼합하기도 한단다. 색깔도 비슷하고 맛도 비슷하니 보통사람들이 쉽게 구별하지 못하는 점을 이용한 것일 게다. 눈 빤히 뜨고도 당한다며 기름을 짤 때는 반드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깨를 키우는 일도 만만찮은 일인데 깨를 지키는 일은 더 어려워 보였다.


분명 양심 있는 방앗간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참기름을 보고도 구별하지 못하는데 보이지 않는 사람 속을 어떻게 구별한단 말인가. 무턱대고 감시하듯 주인을 지켜보면 그 또한 기분 나빠할 것이다. 애지중지 키운 참깨가 중국산으로 변해 버리는 것 또한 안될 일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급기야 나는 남편에게 떠넘기려고 말을 꺼냈다.


"여보! 당신이 참기름 좀 짜 주면 안 돼요?"


"뭐라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보는 남편의 얼굴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주말 오후 깨 보따리를 들고 방앗간을 찾아 헤맸다. 몇 군데 둘러보았으나 주인 이마에 착한 방앗간이라고 쓰여 있는 곳은 없었다. 첫 번째 방문한 곳은 대목 밑이라 바쁘다며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또 다른 곳은 양심적으로 하니 믿고 맡겨두고 가라고 했다. 망설이다 결국 깨 보따리를 들고 다시 집으로 와 버렸다. 참깨 보따리를 조수석 안전벨트에 묶어 놓고 또 하루가 지났다.


깨보따리를 쳐다보니 가슴이 답답했다. 꼭해야 하는 숙제를 못해 밤새 꿈에 시달리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 순간 묘책이 떠 올랐다.


‘시골 방앗간으로 가자.’


친정 근처 시골 방앗간이 있는데 제사 때 떡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시골이니 애써 농사지은 것을 도시보다는 덜 속이겠지’ 하는 생각에 시골로 차를 몰았다. 한 40여 분 달렸을까? 방앗간이 나왔다.


이곳 역시 추석아래라 고춧가루를 빻는 사람도 있었고 들기름을 짜는 사람도 있었다. 주인의 얼굴을 보니 믿음직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인상은 아닌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남자 사장님에 직원도 남자였다. 마음을 졸이며 차례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가 내 참깨 보따리를 받아 들었다. 주인은 먼저 깨의 무게를 달았다. 일곱 되가 조금 넘는다고 했다. 깨 일곱 되면 몇 병의 참기름이 나오는지 물어보고 싶었으나 말이 입에만 맴돌았다. 가게 안은 그리 넓지 않았다. 나는 가게안을 서성였다. 그가 일하는 동선에 내가 걸리적거렸지만 나는 또 다른 묘책을 생각해 내고 있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사진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뚝 튀아 나온 말이었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잘 한 말 같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냈지라며 흐뭇해하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의심받지 않고 그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는 알아서 하라는 듯 고개만 끄덕이더니 이내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는 먼저 깨를 씻었다. 큰 대야에 깨를 붓고 몇 번 건지더니 체로 바쳐 물기를 뺐다. 그의 손은 세밀했으며 능숙했고 나의 눈 역시 그를 쫒는다고 바빴다. 깨끗한 물에 몸을 씻긴 깨는 물기를 뺀 후 두꺼운 솥에 들어갔다. 무거운 깨 솥이 날렵하게 리듬을 탔다. 개미 춤 같은 허리춤을 이십여 분간 추더니 점차 노릇노릇해졌다. 먹음직스럽게 변한 깨는 솥에서 나와 먼지를 털고 한 호흡 숨을 돌렸다. 너무 볶아진 깨는 쓴맛이 나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로 식히는 중이라고 했다. 알맞은 온도가 되었는지 깨바구니가 착유기에 들어갔다. 마침내 참기름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참기름 짜는 전 과정을 처음으로 지켜보았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그의 동선을 쫒았으나 이내 신기한 듯 빠져 들었다. 그는 의심받는 것도 속이는 것도 무의미하다는 듯 익숙한 솜씨로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나 역시 그가 일하는 동안 그의 모습에 빠져 들었다. 뜨거운 열기는 그의 이마에서 땀방울을 만들어 냈으며 나에게로 날아와 부끄러운 마음을 덜어냈다. 기름을 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 속에 있던 불신에 가득 찬 디스토피아도 사라졌다. 나는 나의 무례함을 꾸짖었다. 설령 그가 속인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것이라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참기름 한 병 짜주는 삯으로 4,000원을 받았다. 그의 수고로움에 비하면 너무 적은 돈이라 생각했지만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지불했다. 깨를 볶는 동안 내 마음도 볶아졌다. 그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는 열 한 병의 참기름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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