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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후 Oct 24. 2023

미국 룸메들에게 진실을 말할 때

양심상 드디어 사실을 밝혔습니다.

진은 주말 오전에 매번 운동을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곤 한다. 나도 같이 가고는 싶지만 오전에 사무실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와 뉴스를 보다가 일을 하곤 오후에 중국 박사 친구들이랑 운동을 하는 일과가 잡혀있다 보니 매번 고민에 빠지게 된다. 한두 번이야 익스큐즈를 하지만 왠지 매번 거절을 하면 마음이 아파서 운동을 같이 가기로 했다. 마침 라이언도 오전에 같이 운동을 갈 수 있다고 하니, 결국 같이 오전 운동을 가고 중국 친구들에게는 일이 바빠 못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몰래 냉큼 사진을 찍었다.

운동을 갈 때마다 내 차를 가지고 가곤 하는데 양심상 사실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마음에 룸메들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다. 바로 브런치에 내가 쓰고 있는 "일기"에 대해서 말이다. 어쩌다 보니 20만 명 이상이 보고 있는 일기에 자주 룸메들과의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양심적으로 이야기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한두 번 조회수가 많고 구독자도 별로 없다 보니, "에이 뭐 이런 걸 가지고 이야기할 필요가 뭐가 있어."라고 합리적으로 생각해 왔지만 이제는 뭔가 얘기를 해야 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뭐 별거는 아니지만 뭔가 내가 감추면서 룸메들과 나의 이야기를 몰래 작성한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냥 이야기하기로 했다. 당연히 별 대수롭지도 않은 것이기 때문에 신경도 쓰지 않지만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내 글을 읽을 생각을 하니 앞으로 룸메들의 나쁜 말을 못 하게 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나쁜 말을 한 적도 없고 나쁜 게 하나도 없는 룸메들이지만 몰래 욕할 때는 번역이 안되게끔 돌려서 작성해 봐야겠다. 아무튼 우리는 브런치 내 글이 더 유명해져서 돈을 번다면 한식 가게를 열자는 기분 좋은 장난으로 마무리를 했다.

고구마 수분을 빼주고 아니 이거 타는거 아니야? 할 정도로 10분 이상을 튀겨준다.

운동 후에 집에 오니, 간식거리를 준비해야 할 거 같아서 마침 냉장고에 진이 감자인 줄 알고 삶아놨던 고구마를 사용해 맛탕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마침 냉장고에 넣어두어서 수분이 잘 빠져서 맛탕 만들기에 아주 좋다. 수분이 있으면 기름에 넣는 순간 전쟁터가 되어버릴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내가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거나 챙기기 시작하면 애들이 항상 "뭘 만들려고?"라며 물어봐준다. 마치 무슨 요리 쇼 프로그램처럼 오늘의 요리는 무엇인가를 설명하고 있는데 어느샌가는 그냥 귀찮아서 한국말로 말한다. 예를 들어 고구마 맛탕을 만들려면 이게 뭔지 설명부터 해야 하는데 그러기에 귀찮아져서 그냥 한국말로 "고구마 맛탕"이라고 말하고 나서 나중에 먹어보라고 한다. 엄마를 닮아서 요리할 때 손이 큰 나는 매번 인원수에 비해서 많이 하다 보니 나랑 같이 살다 보면 모든 룸메들이 퉁퉁해진다. 아무리 마른 체형의 사람일지라도 운동과 나의 식단을 통해서 근육 돼지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고구마맛탕을 하면서도 부족한 양에 대해서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정리하고 왔더니 사라져 버린 맛탕, 꿀을 좀 많이 넣었더니 좀 딱딱하다.

집에 마침 꿀이 있어서 듬뿍 넣어줬더니 다소 딱딱해졌다. 나는 꿀 향을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 쓰는데, 건강을 생각하면서 사용했다. 그래도 애들은 꿀이 마치 실타래처럼 늘어나서 의외로 더 맛있었다고 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뜨거워서 나중에 먹으라니까 굳이 입안에 넣고 고통을 받는 라이언과 그를 보면서 나중에 먹기로 결심한 진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뜨거운 음식을 먹다 보니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아는데 미국애들은 뜨거운 음식을 먹게 되면 더 뜨겁게 느껴져서 잘 먹지를 못한다. 모양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맛있었다니 다행이었다.

냥이들의 시에스타 타임

냥이들은 시간이 되면 시에스타 (낮잠)을 즐기곤 하는데 이 자식은 왜 이러고 자는지 모르겠다. 뭔가 불쌍해 보여서 더 귀엽다. 최근에 진이 내 머리를 깎아주면서 이 녀석의 털도 밀었는데 2일 정도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를 좋아해 주는 녀석답게 내가 집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를 낼 때만 냉큼 와서 인사하고 얼른 사라져 버렸다. 나를 좋아해 주는 녀석에게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며칠 전에는 내가 꽃등심을 사서 진한테 스테이크를 해달라고 졸랐다. 연기 속에서 고생을 해가며 스테이크를 만들어줬는데 정말 맛있었다. 에이미가 만들어준 메쉬 포테이토도 맛있었지만 스테이크를 굽느냐고 고생한 진한테 괜스레 미안하면서 고마웠다. 사실 진이나 에이미가 이 글을 읽을 수도 있어서 짧은 칭찬을 넣어보았다.

솔직히 가게보다 맛있지만 고생하는 진의 모습에 부탁하기 미안하다.

우리는 매주 주말에 다 같이 모여있을 때 일주일치 메뉴를 정하곤 한다. 닭가슴살을 사놓고 또 사놓으면서 막상 먹지 않는 이 남정네들을 위해서 나는 닭강정을 하기로 했다. 냥이들에게 간식으로 주고는 있지만 냥이들이 먹어야 얼마나 먹겠는가. 결국에는 버리기 아까워 닭가슴살로 닭강정을 만들기로 했다. 오늘 저녁은 피자를 먹기로 했다. 피자를 먹는 내 사진을 보곤 다른 주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오늘 드디어 요리에서 벗어나는 날이야?"라며 장난을 쳤다. 어렸을 때부터 피자를 좋아했던 나는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마음에 피자를 직접 만들어 먹곤 했는데 속으로 "피자는 사 먹는 게 제일 낫다"라는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있다. 미국은 피자를 커스터마이징 해서 먹는데 나는 뭐든 잘 먹기 때문에 "그냥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애들이 알아서 맛있게 주문해 준다. 사무실에서 집에 오니 이미 피자를 다들 먹고 있었고 에이미가 결제했다는데 에이미 땡큐를 외쳤다. 결국 피자를 사준 에이미.

 다 맛있다.

오늘의 추천 아이스크림은 하겐다즈 말차 그린티이다. 미국 오면 먹지도 않던 하겐다즈를 사 먹기 시작하는데, 맛도 좋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한국에 비해서 저렴하다 보니 자주 먹게 된다. 아이러니한 게 한국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도 하겐다즈보다 비싸다 보니 먹기가 힘들다. 요새는 K 글자만 들어가면 모든지 비싸지는 마법을 볼 수 있다. 나눠먹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나는 있는 건 다 먹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한 번에 사놓지 않는 편이다.


밤에 진의 삼촌이 오시기로 했는데 피곤해서 인사를 못 드리고 잠에 들었다. 진 삼촌은 잘 때 코를 고시는데 이게 또 나름의 자장가이다. 마치 가까이서 듣기에는 힘들지만 벽 너머로 듣기에는 좋은 자장가이다. 사실 진 삼촌이 인상도 좋으시고 성격도 좋으셔서 오실 때마다 싫지 않다. 그냥 나도 한국 아재 특성상 샤이하기에 다소 어색할 따름이지 친해지고 싶은 분이다. 그래도 다음날 오전에 집에서 미팅을 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 좋았다. 나의 요리 솜씨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저녁을 드시고 가냐고 여쭤봤지만 집까지 거리가 멀어서 가셔야 한대서 다음에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말차 그린티 맛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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