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임윤찬 독주회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기대감 한가득 안고 일본으로 향했다.
피아니스트로서 한 젊은 음악가가 낭만주의의 두 거장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했다.
무대에 오른 임윤찬은 첫 음부터 자신의 음악에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감정의 과잉보다, 음과 음 사이의 관계를 정교하게 세우며 음악의 구조를 또렷하게 드러내는 연주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연주는 즉흥적인 열정에 기대기보다, 형식의 골격 위에 감정의 결을 얹는 방식에 가깝다. 리듬의 긴장, 하모니의 전개, 프레이즈의 호흡이 치밀하게 맞물리며, 음악은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얻었다. 젊음의 생동감과 성숙한 사유가 함께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슈베르트 – 피아노 소나타 17번 D.850
슈베르트의 D장조 소나타는 슈베르트가 비교적 건강했던 1825년 여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인근의 가스타인 온천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작곡되었다. 그는 알프스의 웅대한 자연을 감상하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밝고 장대한 성격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로, 넘치는 에너지 속에 슈베르트 특유의 서정성과 명랑함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곡의 특성을 살려 임윤찬은 밝고 생기 있는 울림으로 연주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이 작품의 투명한 성격을 잘 살리면서도, 단순한 경쾌함에 머물지 않고 구조의 균형을 끝까지 유지했다.
1악장에서는 다이내믹의 대비와 리듬의 추진력이 분명했고, 2악장에서는 음 하나하나의 울림 사이에 깊은 사색이 깃들어 있었다.
3악장은 점음표 리듬이 만들어내는 탄력을 자연스럽게 드러냈고, 4악장에서는 “마치 시계 소리 같다”는 그의 표현이 떠올랐다.
오른손의 발랄한 붓점 리듬 아래, 왼손의 반복적인 리듬형과 4도 음형이 규칙적인 시간감을 만들어냈다. 그 안에서 그는 기계적인 정확성보다 생동하는 리듬의 감각을 택했고, 슈베르트 특유의 따뜻한 유머와 인간적 정서를 섬세하게 드러냈다.
스크리아빈 – 피아노 소나타 제2·3·4번
후반부의 스크리아빈은 전반부와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쳤다. 2번 ‘환상곡’에서는 어둠과 빛이 맞닿는 경계가 인상적이었고, 투명한 음색과 강한 대비가 작품의 낭만적 성격을 또렷하게 부각했다. 이어진 3번에서는 다성적 구조가 선명하게 살아났으며, 각 성부의 흐름이 입체적으로 들렸다.
4번 소나타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F♯장조의 신비로운 색채가 무대를 감싸고, 두 악장이 하나의 유기적 호흡으로 이어지며 클라이맥스로 치달았다.
임윤찬은 이 작품을 과장된 드라마보다 긴 호흡의 에너지로 끌고 갔고, 그 결과 음악은 한층 더 초월적인 긴장을 획득했다.
앵콜로 연주된 라흐마니노프의「보칼리제 Vocalise」는 담백하면서도 색채감 있는 보이싱이 돋보였다. 선율은 꾸밈없이 노래했고, 그 안에 섬세한 음색의 층위가 살아 있었다. 공연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충분히 고요하고도 아름다운 선택이었다.
이날의 연주는 단순한 감상 이상의 것이었다. 슈베르트의 밝음과 스크리아빈의 신비, 그리고 보칼리제가 남긴 잔향까지, 임윤찬은 각 작품의 핵심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해석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공연장을 나서는 순간에도 그의 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벚꽃의 설레임과 함께 시작된 밤은 깊은 여운으로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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