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리아 Jun 29. 2024

경치는 좋은 데, 먹을 것은 별로 없네: 지중해

북부 유럽인들에게 긴 여름 휴가를 뜻하는 ‘바캉스’는 대개 남부 지중해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지중해로 내려가는 ‘태양의 길’은 휴가철이 시작되면 자동차로 넘친다. 

300일 동안 찌푸린 회색 하늘을 보며 살다가 300일 동안 눈부신 태양이 비치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쏟아지는 햇살, 가벼운 차림, 자유와 해방감... ‘지중해’가 부른다. 

이 거대한 관광단지에 매년 3억 명 관광객이 몰린다. 


지중해는 바다와 해안이 아니다. 바다와 산이다. 항구 도시들이 산을 배경으로 박혀 있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사면에 모여 있는 소도시의 풍광은 평원에 밋밋하게 뻗어 있는 항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너무 경사가 가팔라 자동차 도로를 만들지 못하는 곳도 많다. 

짐을 나르려면 사람의 어깨로 지든지 당나귀를 쓰든지 해야 한다. 

그런 불편함은 주민들의 것이고 절벽을 따라 바다를 굽어보고 있는 그림 같은 집들을 보면 

하! 감탄사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이런 기막힌 풍광은 어떻게 생겼을까?


600만 년 전 유럽과 아프리카 두 대륙은 ‘테티스’ 대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두 대륙을 받치고 있었던 지각판이 가까워졌다. 

두 대륙 사이에 바닷물이 갇혀 거대한 소금 호수가 생겼다. 

소금물이 천 년 동안 증발하고 메마른 협곡이 되었다. 

어느 날 서쪽 낮은 둑이 무너지면서 대서양 바닷물이 200년 동안 흘러 들어와 협곡을 채웠다. 

지중해가 생겼다. 산들이 바다를 굽어보게 되었다. 


지중해 바다? 세계 바닷물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바다가 작아 갯벌이 없다. 

윈드서핑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 먹이 플랑크톤이 사는 곳도 별로 없다. 

증발은 심하고 물을 흘려 넣어 주는 강도 별로 없다. 아프리카 쪽 해안에서 상시 흐르는 강은 

이집트의 ‘나일’뿐이다. 대서양 바닷물이 흘러 들어와 보충하지 않으면 지중해는 말라버린다. 

수온이 너무 높고 맛은 너무 짜서 물고기 종류도 양도 많지 않다. 


“어부들은 자신의 집이 보이는 거리에서 고기를 잡는다. 더 나가 보아야 생선이 없다. 

현대식 장비도 필요 없다. 낚시나 그물이면 된다.” 

지중해 전체의 어획량은 노르웨이 한 나라 어획량의 ⅓ 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지중해 항구도시들을 부유하게 했던 것은 교역이었지 고기잡이가 아니었다. 수상 도시 베네치아가 

제국으로 성장한 것은 소금을 만들고 고기를 잡는 능력 때문이 아니라 장사에 능했기 때문이었다.


참치, 정어리, 큰 멸치가 많이 잡힌다. 

참치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가 산란기가 되면 따뜻하고 짭짤한 물로 모여들어 수면 가까이 올라온다. 

그때 배로 물고기를 몰아 몽둥이로 쳐서 기절하면 건져 올리는 것이 전통적 참치 잡이였다. 

물고기를 때려잡다니! 펄쩍 뛰어오르는 물고기들과 몽둥이 든 사람들은 상상만 해도 힘이 넘친다.

힘들고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이제는 하지 않지만 간혹 일본 사람들이 시칠리아 어부들에게 돈을 주고 

전통 참치 잡이에 나서기도 한다. 아래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바다의 참치 잡이 사진이다.

‘지중해 참치’는 멋있게 들리지만 맛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생선은 원래 찬 바다에서 살아야 살이 단단하고 맛있다. 



서민들의 생선은 정어리다. 여름철 지중해 해안가에서는 수영복 차림으로 정어리를 굽는 냄새가 

요란하다. 마른 소나무 가지를 태워 구우면 그 냄새가 배어 더 맛있다고 하는데, 

햇살 아래서 생선 구이를 먹는 것만도 벌써 감격이다. 


최근 정어리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구 온난화와 공해로 물고기 먹이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생선의 크기가 30%가 줄었고 수명이 짧아졌다. 

추세가 계속되면 고기를 아예 못 잡게 될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설마! 


지중해 유역은 평원이 없고 땅이 척박해서 농사를 많이 짓지 못한다. 먹을 것이 많지 않다. 

지중해 사람들의 식사는 절제가 일상화된 소박한 식사다. 

‘지중해 식단’은 야채, 곡물, 올리브유를 많이 먹고 고기와 유제품은 적게 먹는 다이어트 식이다. 

고대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간절한 소원은 먹고 싶을 때 한 번 실컷 먹을 수 있게 치즈 한 단지를 갖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소원 성취가 어렵지 않았을텐데!

나폴리나 팔레르모에서 잠시 그늘이나 벽에 기대서 노동자가 먹는 간식은 양파와 토마토에 올리브유를 

뿌려 빵과 먹는 것이다. 포도주 한 잔만 곁들이면 한 끼 식사가 된다. 



지중해 사람들의 조촐한 식사를 건강식으로 전 세계에 선전한 것은 미국인들이었다. 

2차 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은 지중해 사람들이 자신들과 다르게 먹으며 오래 산다는 것에 주목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록펠러재단이 연구단을 파견해 크레타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장수하는 이유를 조사했다. 먹는 것뿐 아니라 함께 모여 먹는 습관이 심장과 혈관 질병을 감소시키고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의 

위험을 낮추며 불임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10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미국 사람들이 유명하게 만든 또 다른 지중해 식품이 있다. 피자다. 

제일 유명한 것은 나폴리 식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보증서를 발급하는 피자다. 

8개 항의 규정을 항상 지켜야 하는 데, 장작불 485℃ 이상인 화덕에서 구워야 하며, 

반죽은 손으로 만들고 두께를 2㎝이하로 하되 한가운데는 두께가 0.3㎝ 이상이어야 한다. 

종류는 마리나라,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마르게리타, 3 가지뿐이다. 

토핑은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올려야 한다. 다른 것은 안 된다. 

소박하고 깔끔한 토핑이다. 점점 화려하게 전개되고 있는 피자 토핑에 비교하면 너무 재미없고 싱겁다고 

하겠지만 맛있다. 바로 이 맛, 잊지 못하는 지중해 맛이다. 

도대체 장작불에 밀가루 반죽만 구웠는데 어떻게 이렇게 맛있는 것일까?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