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늘 싸웠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 싸움을 중단했다.
같은 신들을 믿고 같은 말을 쓰지 않는가? 스포츠 이벤트는 문명인들이 유대감을 확인하고
신에 경배를 올리며 자부심을 느끼는 좋은 기회였다.
4년마다 올림피아에서 개최되는 스포츠 게임이 가장 평판이 좋았다.
경기가 열릴 때가 되면 싸움을 중단하고 모였다.
성인 남자만 참가했는데, 현재 발굴된 경기장 규모로 보아 4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자는 보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14개 대회 규정 중 여섯 번째는 여자가 경기를 몰래 보다가 들키면
절벽으로 데려가 밀어 떨어트린다는 것이었다. 그런 비밀주의가 왜 필요했을까?
생업을 중단해야 했으므로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점차 개방되어 누구나 월계관을 쓰고 유명해질 수 있게 되었다.
우승하면 이름을 알리고 도시국가의 명예를 높일 수 있었으며 성대한 환영을 받고 생활이 보장되었다.
연속해서 3번 승리하면 조각상이 만들어져 전시되었다.
전쟁을 중단하고 벌이는 경기는 모두 전투 동작들이었다.
격투기, 권투, 원반 던지기, 창던지기, 마차 경주 모두가 그랬다.
‘마라톤’도 평화로운 장거리 달리기 같지만 아니다. 적군이 나타났을 때 원병을 청하기 위해
병사가 최대한 빠르게 달리는 동작을 재현하는 것이다.
경기는 모두 전투의 평화 버전이다. 사람이 죽어서 피를 보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고대그리스인들은 싸우지 말자고 모여서 닷새 동안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사이좋게 놀았던 것이 아니다. 싸움을 계속한 것이다.
인간은 구제 불능이 아닌가? 싸움을 도저히 멈추지 못한다.
두 인간 집단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싸우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천 년 넘게 계속되었던 올림피아 스포츠 게임은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이교도 행사라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올림피아 경기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경기장에 있었던 제우스 상은 동로마로 실려가 금괴가 되었다.
신전과 경기장 그리고 훈련장과 숙소는 지진으로 무너졌다.
계곡을 감싸고 흐르는 두 하천이 여러 차례 범람했다.
무너진 건물과 쓰러진 돌기둥 위로 물에 실려온 진흙이 조금씩 쌓이고 건물 잔해들을 완전히 덮었다.
1천5백 년이 지나 경기장 발굴이 진행되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학자들이 이어가며
150년 걸려 6m 높이 흙을 쉬엄쉬엄 치웠다. 현재는 타원형의 전차 경주 트랙만 제외하고
모든 건물의 윤곽이 드러나 있다.
올림피아 경기의 기본 콘셉트도 화려하게 부활했다.
쿠베르탱이라는 프랑스인이 아이디어를 냈다.
‘올림픽조직위원회’를 꾸리고 파리 박람회와 동시에 개최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전에 올림픽의 발상지였던 그리스에서 먼저 실험적으로 열어 보았다. 크게 성공했다.
그리스인들은 계속 자기들 나라에서 개최하고 싶어 했지만,
매번 개최지를 바꾸어 돌아가면서 개최하자고 결정되었다.
그래도 그리스 팀은 매번 개막식에서 맨 먼저 입장하는 것으로 올림픽 게임의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채취한 불을 개최지까지 운반해서 성화대에 점화하는 과정은 엄숙한 예식이 되었는데,
그 저작권은 히틀러에게 있다. 아리안 족의 탁월한 신체를 전 세계에 보여 주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였다.
고대그리스인들은 전쟁을 중단하고 경기를 했지만 현대인들은 전쟁을 중단하지 않는다.
평화의 제전이라고 하지만 평화는 무슨? 여전히 죽이지 않는 전쟁이다.
온 국민이 TV 앞에 모여 열광적으로 메달 경쟁에 목을 매는 것을 보면 거의 전시 상황이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 것만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