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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연 Oct 13. 2022

01.내 자식들한테 그럴 거 같아서

#시어머님의 살아온 날이 궁금해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한 11년차 며느리

#1-1. 시어머님께서 하늘에 계신 친정어머니께 전하는 이야기 


엄마, 이게 또 생각나네.

요양원에 계실 때 장사 끝내고 저녁에 가면, 다른 할머니들이 나한테 그랬어요.

“엄마가 딸내미 기다렸어. 식사 끝나면 밖에 나가서 한참을 기다리시더라고.”

근데 엄마는 늘 거짓말하셨어요.

“힘든데 뭐 하러 자꾸 와?”


엄마, 눈물이 났어. 

나도 나이 더 먹고 더 아프면 내 자식들한테 그럴 거 같아서.      

엄마 돌아가신 지 벌써 25년이 됐네. 

내가 큰 수술을 세 번 하고 나니까 기억력이 자꾸 없어져. 


이렇게 글 쓰면서 엄마 생각하니까 좋아요. 

내 나이 67살에 글 쓰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김 서방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어. 

엄마가 김 서방 잘 골라서 짝 지어주었잖아. 

엄마, 아무 걱정 말고 하늘나라에서 잘 지내고 있어. 

나중에 만나면 옛날 얘기하면서 웃어도 보고 울어도 보자. 

졸려. 

이만 쓸게.


엄마, 내일 또 봐. 고마워.


2022.08.06



#1-2. 며느리가 시어머님께 전하는 이야기 

                                                                       

25년 전, 

가게를 정리하고 석양을 따라 요양원에 계신 

친정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마흔두 살 황영자 어머님의 발길을 따라 가봅니다.


함께 걷다 보니, 

마흔 살인 저보다 고작 2살 더 많은

마흔두 살의 우리 어머니는 어떤 모습이셨을까?라는 궁금증이 문득 생겨요.


저는 마흔 살이 되면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닫고,

두려울 것 없는 무적의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막상 이 나이가 되고 보니 마음이 나이만큼 

성장하지 못하여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어머니도 그러셨겠지요?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 딸내미를 

한참 기다렸다는 다른 할머니 말씀을 이미 

들었는데, 힘든데 뭐 하러 자꾸 오냐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었을 때 우리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평생 장사하시며 고생하셨던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서 그 장사를 이어하는 딸이 만나 

서로의 안쓰러움을 마주하며 차마 앞에서 

흘리지 못하고, 뒤돌아 훔쳐야 하는 눈물. 


병원에는 편찮으신 어머니가, 

집에는 생때같은 자식들이 있던 어머니는 

그때 이미 알고 계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나가실지.     

25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부정맥, 디스크, 

무릎 수술을 다 견뎌내시고 가게를 지키고 계시네요. 


어머니 손가락 끝에는 지문이 아닌 상처가 곳곳에 굵게 파여 있죠. 

그 진한 상처를 보면서도 어머니께서 

‘너희만 잘 살면 나는 괜찮다 괜찮다’ 하셔서 

정말 괜찮으신 줄 알았어요. 


어머니 글을 보고서야 우리 어머니 

안 괜찮으시구나. 많이 외로우셨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사람이 꼭 먹어봐야 짠 줄 알고, 

손 데어봐야 뜨거운 걸 아는 게 아닌데, 

제가 아직도 이렇게 철이 없네요.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시는 말씀을 제가 믿어야 제 마음이 편하니 알면서도 눈 감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께서 글쓰기를 시작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으니 이렇게 옛날이야기도 하고, 요즘 이야기도 하면서 함께 웃고 울어도 봐요.      


내일 글로 또 만나요. 


어머님,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사랑합니다.  


2022.08.02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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