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7시 40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따르릉, 따르릉'
매일 저녁 7시 40분, 같은 시각 우리 집에는 전화벨이 울린다.
퇴근하신 어머님께서 저녁을 드신 후, 이른 잠자리에 들기 전 전화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미리 저녁을 먹고 씻기고
전화를 받기에 어렵지 않은 시간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이 시간은 저녁 먹고, 씻고, 숙제를 하고 가장 바쁜 시간이어서 난처한 상황이 자주 벌어졌다.
전화통화 시간을 바꿀 수도 있었지만, 시장에서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마치고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아이들과의 전화통화를 즐거워하시는 어머님이였기에 아무대책없이 말씀드리기엔 어머님의 재미를 앗아가는 것 같은 죄스러움에 다른 재미를 찾아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하얀거품이 가득 낀 고무장갑을 부랴 부랴 벗고, 전화를 받았다.
"세연아, 뭐하니?"
전쟁같은 하루를 마치고 이제서야 엉덩이를 땅에 붙인 어머님의 목소리는 모처럼 평화롭다.
"네, 저녁먹고 설거지 하고 있어요. 어머님은 오늘 잘 지내셨어요?"
어머님의 하루 일과중 가장 편안한 통화시간 일명 소확행을 흔들고 싶지 않아 내 입은 차분한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큰애든 둘째든 어서와서 전화를 받으라는 강력한 텔레파시를 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내 텔레파시를 가볍게 패스하고 방이나 욕실로 쏙 들어가 자기 할일을 하고 있다.
안되겠다. 어서빨리 답을 찾아야겠다. 그러던 중, 글쓰기 코칭을 하시는 백미정 작가님께서 주변에 글을 쓰고 싶은 분을 추천해주면 1명을 선정해 도와주시겠다는 이벤트를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어머님이 떠올랐다. 하지만 어머님은 평생 글을 안써보셨는데 가능하실까라는 생각이 들어 고민만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며칠 후, 숨을 가다듬고 비장한 마음으로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 글 한번 써보실래요?"
"글? 내가 무슨 글을 쓴다냐~ 평생 장사만 했지, 무슨 글을 써~~"
"그럼, 어머님 장사한 이야기 쓰시면 되죠. 저 우리 어머님 살아온 날들 인생 이야기 궁금해요."
"그랴? 우리 세연이가 하자고 하면 해야지. 어떻게 하면 되는거여?"
"와!! 어머님! 정말요? 그럼 하루에 딱 한쪽씩만 써보셔요."
"언제부터 쓰면 되는거여?"
"와!!! 대박!! 어머님 오늘부터요!!!"
'띠링,띠링'
한 시간 후, 어머님으로부터 사진 세장이 도착했다.
그 사진에는 달력을 북북 찢어 단숨에 써 내려간 어머님의 인생이 적혀있었다.
결혼하고 11년간 한번도 듣지 못했던, 어머님의 엄마,아빠이야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머님과 그동안 무슨 이야기를 하며 살았던 걸까.
나는 어머님이 아닌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더 이상 오후 7시 40분,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다.
이 날 이후, 매일 밤, 어머님의 인생이 매일 매일 한편씩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