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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연 Jan 11. 2022

너무 00 것은 그 일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뭐 마실래?

캐모마일이요.


뭐 마실래?

히비커스요.


뭐 마실래?

오렌지에이드요.


뭐 마실래?

청포도에이드요.


이렇게 메뉴를 고를 때마다 다르게 이것 저것 말하는 나는

사실 아메리카노 요.


라고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커피를 안 마신다.


모든 것에 '무던한 척'

하려고 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노력해도 안되는게 하나 있다.


커피.


커피 카페인이 몸에 들어가면

두근 두근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


가끔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는 

음료가 있는 것도 아닌

나는 프렌차이즈 카페보다는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를 좋아한다.


그래서 남편은, 내 기분이 쳐지는 것 같아 보이면

발 빠르게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를 검색한다.


두 번, 세 번 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새로운 곳에 나를 데려가면

내 엔돌핀이 폭발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아는 나름 신랑의 배려이다.


인테리어와 빵까지 

맛있다면 금상첨화이다.

빵이 맛있는 곳에서는 주로 나는 따뜻한 우유를 마신다.


왠지 따뜻한 우유가 담긴 예쁜 잔을 들고 있으면

귀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 참 좋기 때문이다.


우유를 따뜻하게 데워 먹으면 영양소가 파괴되어 좋지 않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나를 한번 더 배려해준 느낌이라, 더 행복해진다.


이렇게 늘 한 음료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가 작년 연말부터 정착한 음료가 있다.


그것은 바로.

디카페인 카페라떼이다.


사실, 맛은 별로 없지만,

나는 거품 위에 바리스타가 그려주는 하트를 보는 재미로 그 음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사람마다 이렇게 다양하게 하트를 그려줄 수 있다니,

매번 감탄했고, 오늘은 어떤 하트를 그려줄까 기대감이 들었다.

음료를 기다린다기 보다, 예술 작품을 기다리는 경건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나는 카페라떼에 정착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원이

내 이름을 불러 커피를 받기 위해, 바리스타 앞에 갔는데,


그 바리스타는 양볼이 빨갛게 달아올라있었고,

내 커피잔을 본인 손에 들고, 

나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이며, 


"고객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무슨 일이세요? 괜찮으세요?"


"제가 신입이라 하트를 아직 잘 못 그립니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라며 커피잔을 꼭 쥐고 계셨다.


"나는 괜찮아요. 그냥 주세요."


라고 말하고 쟁반에 올려진 잔을 보았는데,


정말, 만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푸하하하 빵 터져버렸다.


어지간해야, 머쓱하고 말텐데..

진짜 훅 들어왔다.


그동안 내가 보았던 ,,,

사람들이 소위 말하던 라떼아트라고 말하던 그 하트는 없었다.


내가 카페라테를 시키는 단 하나의 이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내 웃음소리를 들은 후,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그 직원도 웃음을 터트렸고,

그 옆에 있던 직원들이 몰려와서 구경하기 시작했다.


선임 직원으로 보이는 분께서,

다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하트 때문에 다시 만든다고?'


그것도 웃긴 것 같아, 괜찮습니다. 라고 말한 후

테이블에 와서 앉아서 보는데, 정말 너무 웃긴다.


이게 이렇게까지 웃긴 일인가...

싶을 정도로 혼자 킥킥 거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귀여운 하트에 이렇게 까지

웃음이 계속 나는 이유는 이 하트에

대한 내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십년을 정착하지 못했던 음료에서

(사실 골고루 먹어보는 것을 좋아해서도 그랬지만)


이제야 한 음료에 정착했는데,

너무 웃긴거다.


그 이유를 이렇게 무색하게 만든

오늘의 하트가 너무 웃긴거다.


남들은 그깟 음료에 하트 모양이 

뭐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 직원은 

누구보다 하트를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열심히 그렸을 거고,


나는 오늘은 어떤 아트일까?

진심을 다해기대했는데, 


둘의 그 진심 교집합 하트의 예상못한

모양에 큰 웃음이 터진 것이다.


오늘 일도 별 기대가 없었다면,

그냥 스쳐갈 수 있는 일일 뿐이다. 


일희일비하는 삶은 감정 소모가 많아 힘들겠지만,

나는 2022년은 많이 웃고, 울수 있는 한해를 보내고 싶다.


타인의 행동에 휘둘리는 감정은 경계하되,

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벤트에는 크게 기뻐하고 그 순간을 누리고 싶다.


살면서 어떤 일에 

너무 화가 나거나

너무 슬픈 것

너무 웃긴 것은 

그 일에 진심어린 애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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