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수결은 답답하게 느껴질까?

모두의 1표는 같은 무게일까

by 광해



다수결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생각이 짧은 사람도, 정보를 모르는 사람도,
심지어 자기 이익만 좇는 사람도
나와 똑같은 1표를 행사할 때다.




같은 종이에 찍힌 한 표지만,
그 안에 담긴 생각의 두께는 전혀 다르다.



표의 무게는 같지만
사고의 깊이는 다르고
판단의 구조는 전혀 다르다.



그 차이가 결국
조직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를 갈라놓는다.




다수결의 가장 큰 약점은

‘모두가 같은 수준의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경험과 논리, 정보와 숙고를 통해 판단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감정, 선동, 순간의 불만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이 둘의 표가 똑같은 한 표로 작용한다.


정보가 얕으면 생각도 얕아진다.

생각이 얕으면 책임도 가벼워진다.




하지만 다수결은
‘이 표결에 대한 정보는 모두 알고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실제로 사람들은
얼핏 들은 이야기,
시끄러운 사람들이 내뱉는 감정에

휘둘린다.



한쪽 방향으로만

쌓인 벽돌처럼,


틀어진 정보 위에 쌓인 판단은
언젠가 한쪽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택이
조직의 방향을 바꾼다.



조직의 결정은

당장의 달콤함보다
10년 뒤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마주친 다수는
오늘의 불만, 지금의 감정,
눈앞의 달콤함에 붙잡힌다.



멀리 보려는 사람일수록
다수가 코앞만 보는 게
더 선명하게 보인다.



어떤 사람은
오늘과 내일만 적힌 달력으로 살고,
어떤 사람은
십 년을 한 장에 놓고 본다.



이 두 시야의 간극이
다수결이 만들어내는 답답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다수결은 누구에게나 같은 두께의 표를 나눠주지만

책임의 두께는 누구나 같지 않다.



가벼운 손짓으로 내던진 표가
긴 시간을 통째로 바꾸어 버릴 때,



십 년을 바라보는 이가 느끼는 건

불만이 아니라 무력감에 가깝다.




내 1표를

남의 1표보다 “더 무겁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더 깊게,
더 정확하게,
더 성실하게 만들 수는 있다.



적어도
내가 던진 표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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