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깃털만이 남은 시대
요즘 사람들을 보면
‘잘 살고 있는가?’보다
‘잘 보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 보인다.
행동보다 이미지,
실력보다 분위기,
내용보다 연출.
깃털의 가벼움이 뼈의 무게를 가린다.
나는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점점 더 ‘표면’에 기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본질을 외면하려한다.
하지만 지금의 사람들은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다.
노력은 오래 걸리고,
결과는 천천히 드러나고,
진짜 실력은 기다림 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사람들은 시간을 외면한다.
대신,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것에 매달린다.
옷차림, 표정,
장식, 꾸며진 말투.
소비의 내용.
이건 노력보다 빠르고,
실력보다 싸고,
성장보다 즉각적인 보상이다.
SNS는 인간의 허영을 구조화했다
SNS는 인간의 욕망을 아주 단순한 공식으로 만든다.
“보여주면 존재한다.”
올리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 같고,
보여주지 않으면 뒤처진다고 느끼는 듯 하다.
존재가 이미지에 종속되고,
평가가 숫자로 환원되고,
관계가 타인의 시선에 맞춰진다.
원래 허영은 인간의 본능이었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그 허영을 확대증폭한다.
사람이 허영을 쓰는 게 아니라,
허영이 사람을 쓰는 시대다.
깃털은 더 멀리 날아간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다.
속도는 무거운 걸 싫어한다.
복잡한 걸 싫어한다.
깊은 걸 싫어한다.
무겁고 깊은 것들은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시간을 내지 않는다.
가벼운 건 멀리 날아가고,
무거운 건 제자리에서 깊어진다.
세상이 가벼움 쪽으로 기울어진 이유다.
그 기울기는 결국,
본질을 우회하는 쪽으로 세상을 이끌었다.
실력은 증명해야 한다.
성품은 시간이 필요하고,
태도는 꾸준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지는
그 모든 귀찮은 것을 흐리게 해준다.
이미지는 사람을 속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속이는 것보다
속는 것을 더 편하게 받아들인다.
왜냐면
속는 것이 판단보다 쉽기 때문이다.
판단은 에너지를 쓰지만
이미지는 그냥 보면 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남을 믿어서 속는 게 아니라
“생각하기 싫어서” 속는다.
나는 깃털안을 보는 사람이고 싶다
겉이 나쁜 건 아니다.
나는 가벼워지고 싶지 않다.
겉을 위해 속을 비우고 싶지 않다.
겉은 연출할 수 있지만
속은 반복해서 드러난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깃털이 빠진 내 모습이
창피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