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法), 그 관(管)은 상식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

새벽별 아래서(書)-03

by rainon 김승진

물 수(水) 변에 갈 거(去).

한자 법(法)을 뜯어내서 풀이하면 저렇다고 한다. 법(法)이라는 한자를 만든 이는 생각했던 것일까? 법이라는 것이 물이 흐르듯, 순리에 맞게, 자연스럽게 인간사(人間事)를 이끌어간다고 믿었을까? 혹은 이끌어가기를 바랐던 것일까?


만법(萬法)의 통칙(通則), 대한민국 모든 법을 관통하는 기본 원리를 담았다고 하는 민법(民法) 제1편 총칙(總則). 민법의 첫 조문은 이렇다.


제1조(법원)

민사에 관하여 법률에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이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


판사도 월급쟁이. 그것도 국민 세금으로 밥 먹는 직업이니, 법에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판사는 재판을 거부할 수 없단다. 법전을 아무리 뒤져도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을 수 없다면, 재판관은 그가 가진, 그리고 일반인 누구나 납득할 만한 조리(條理=상식)를 동원해서라도 꼭 판결을 내리라는 말이다.


25년 전, 처음으로 법서를 열어 인생 처음으로 진지하게 만났던 저 조문, 민법 제1조 앞에서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기 적힌 조리가 분명 쌀에 든 돌을 걸러내는 조리(笊籬)가 아님은 얼추 짐작하겠는데...


조리(條理)는 상식과 같은 말이다. 「이치에 맞도록 인간과 사물이 행동하거나 존재하는 상태로서, 실정법이나 관습법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에 최종적으로 의지하여야 할 법원(法源)」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렇다면, 「이치에 맞도록 인간과 사물이 행동하거나 존재하는 상태」 인 조리(條理)보다 法(관습법을 포함한)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당연한 이치와 상식보다도, 고매하신 국회의원들께서 직접(?) 정성껏(?) 만드셨을 법조문 글자가 먼저라는 소리다. 네? 뭐라고요? 갓 스물이 지났을, 뇌가 채 영글지 못한 대학 1학년생은 법학이라는 학문 입구에 들어서기도 전에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요?”라고 교수님께 질문을 차마 하지는 못했다. 강의실을 채운 수백 명 중 그런 발칙한 생각을 한 바보는 나 하나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굳이 대놓고 내가 바보임을 고백할 정도의 용기까지는 없었으니...


민법 제1조가 뜻하는 바를 깨치면서 민법총칙 첫 수업시간의 ‘저 홀로 바보 생각’을 떨쳐낸 것은, 상당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다. 뚜렷한 형체가 없이 구체화·객관화되지 않은 ‘상식’이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수긍할 보편적 규준으로서의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그 상식의 정수(精髓)들을 사회적 합의로써 부동문자(不動文字)로 못 박은 ‘법’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민법 제1조가 ‘상식’보다 ‘법’을 앞서게 한 까닭인 것이다. 인간사를 주관하는 ‘법’이라는 것은 약속이고, 약속은 그 해석을 두고 이견과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그래도,


여전히, 물음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물이 흐르듯, 순리에 맞게, 자연스럽게 인간사(人間事)를 이끌어가는 ‘법’이라는 것은, 결국 그 물이 흐르는, 인간사가 움직여가는 관(管)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管)은 순리에 맞게 물이 흘러야 하는 상식대로 설계되어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관을 설계하는 것은 사람이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 모두가 그 설계에 참여할 수가 없기에, 그 설계자는 언필칭 ‘선거’라는, 어쩌다 한 번씩 시혜적(?)으로 열리는 직접민주주의 페스티벌의 승자들, 약육강식 이 살벌한 인간사(人間事)의 승리자들이다. 그래서 간곡히 바라건대,


부디 그 설계자들이, 제발 법을 만드는 그 순간만큼은, 상식적이기를 양심적이기를 소원한다.


「법이라는 한자가 해치에서 나온 거 알아요? 머리에 뿔 달린 소같이 생긴 놈이에요. 해치가 그놈 성격이 워낙 충직했다나? 바르지 못한 사람은 들이받고 옳지 못한 사람은 물어뜯어 버렸대요. 법이란 건 원래 그런 거였던 거지. 들이받고 물어뜯어 버리고.」 (출처: 드라마 <괴물>의 대사 중)


바르지 못하고 옳지 못한 이들을 물어뜯기는커녕, 그놈들의 이익과 권세만을 드높이고 지킨다면, 그래서 힘없어 조그만 이들을 짓밟고 괴롭힌다면... 상식이 아니라면, 그건 법이 아니다. 사악한 폭력일 뿐이다.


없는 이들의 메마른 밭에 대야 할 물까지 끌어다가, 이미 넘치게 가진 자들의 비옥한 토양을 적시게 하는 관(管)이라면, 그것은 법이 아니다. 악마의 빨대일 뿐.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늘, ‘법’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법(法), 물이 흐르는 그 관(管)은 상식에 맞게 설계되어 있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새벽별 아래서(書)... 그 서(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