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월의 애벌레 – 제14화
다음날. 선거를 이틀 앞둔 월요일 저녁. 한산고 총동문회 재무국장의 교외 별장. 널찍한 마당에 펼쳐진 기다란 테이블 위, 한우 생등심 굽는 연기와 냄새 주변으로 동문회 임원들 열다섯 명이 둘러앉았다. 좌중을 살펴보던 박봉술 동문회장이 테이블 맨 끝 상석에서 일어섰다.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빠짐없이 모두 참석해 주신 우리 한산고 총동문회 임원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뭐 항상 그래 왔지만, 선거기간 중에는 동문회 개최를 못하게 막은 공직선거법 덕분으로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이렇게 경치 좋은 우리 재무국장 별장에서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안주 삼는 것도 괜찮네요. 자! 우리 한산고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다 같이 건배합시다. 한산고! 위하여!”
몇 차례의 건배사가 외쳐지는 동안에 술잔은 돌고 돌았고 모두가 만취 직전에 이를 무렵, 거나하게 취한 박봉술이 손뼉을 세 번 쳤다. 그러자 박봉술의 후배들 모두가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다물고 박봉술의 입을 바라보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우리 한산고는 하나로 뭉쳐야 해. 현병규 시장 재선을 위해서 여기 아우님들이 마지막까지 힘을 보태줄 거라 믿는다. 각자 자기가 맡은 기수 동창들은 물론 사돈의 팔촌까지 현병규를 찍도록 필사의 노력을 다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리고 하나 더... 잔챙이들 시의원 선거는 내가 신경을 잘 안 쓰는데... 이번에 젊고 똑똑한 친구 하나는 우리가 좀 도와줘야겠어. 새정치당 2-가번 시의원 후보 장세연. 이번에 의회로 보내자. 오케이?”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장세연 지지를 당부하는 사이, 박봉술의 휴대전화는 그의 모든 멘트들을 다 녹음하고 있었다. 그리고 술자리가 파하고 난 후 귀갓길 택시 안. 박봉술은 본인의 목소리를 담은 녹음 파일을 장세연에게 전송하며 메시지를 남겼다. “최소 수천 표가 장 후보한테 갈 거야. 우리 서로 고마움을 잊지 않고 주고받는 사이가 되자구. 마지막까지 파이팅!”
다시 또 하루가 지났다. 화요일 저녁 7시. 선거 전날 마지막 유세판이 펼쳐진 한산시 최대 번화가 사거리는 붐비는 인파와 유세 차량들이 토해내는 마이크 소음으로 정신이 없었다. 마지막 지지 호소를 목이 쉬도록 외친 시의원 후보 장세연이 유세 차량 연단에서 내려왔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 장세연은 명함을 돌리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그러다가... 쉴 새 없이 인사하느라 바쁜 장세연의 명함을 건네받는 누군가. 묘한 익숙함에 고개를 들어 마주한 얼굴은 안이지. 동시였다. 바 <쁘렘>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출근길을 재촉하던 안이지도 무심코 누군가 건네는 명함에 적힌 이름, 장세연 세 글자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6년 만의 만남.
짧은 순간, 말없이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던 두 사람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느끼고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한동안 못했던 운동을 위해 복싱 체육관을 향하던 유태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두 여자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6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세 사람이 그려내는 삼각형 안으로 어색한 익숙함이 피어난 몇 초가 흐르고... 셋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각자의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렇게 화요일이 저물어 가고 수요일 해가 떠올랐다.
선거일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