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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움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23화

by rainon 김승진

정장 차림의 세 남녀. 가윤고등학교 3회 동창생이자 고교 영화 동아리 ‘은막 위 잔물결’ 창단 멤버 세 남녀. 서로를 번갈아 바라보는 안이지, 유태연, 장세연을 5층 높이 한산시의회 청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던 의정팀장이 장세연 의원을 보고는 허리를 숙여 깍듯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일찍 나오셨네요. 의원님.” 그리고는 옆에 서 있던 안이지와 유태연을 보고서 말을 이었다. “아... 오늘부터 의회에서 근무하게 된 직원들입니다.” “알아요. 의장님 나오셨나요?” “아. 아직 출근 안 하셨습니다.” 세연은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1층 로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쫓아가서 엘리베이터를 잡아 드려야 하나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던 의정팀장이 승강기에 오르는 세연을 잠깐 바라보다가 이지와 태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어와요.”


“반가워요. 오늘부터 우리 한 팀으로 일하게 되었네. 자. 열심히 잘해봅시다. 의사팀장 지선아입니다.” 따뜻한 미소로 두 신입 직원을 맞이하는 의사팀장은 무척 동안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50대 초반의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된 얼굴의 의사팀장 지선아는 단정하고 온화한 인상이었다. “유태연 씨는 앞으로 의사일정 관리와 회의 진행을 맡게 됩니다. 안이지 씨는 속기와 의회 기록 관리를 담당할 거구요. 당장 모레부터 정례회가 시작되니까... 지금 시간이 촉박하고 준비할 게 많아요. 이따 오후에 전임자들이 와서 업무 인계인수해 줄 겁니다. 회의 진행과 속기 업무는 서로 도와가면서 같이 할 일이 많아요. 그래서 자리도 바로 옆 자리고. 두 사람, 어서 친해지기를 바라요. 지금 의원님들 몇 분 나오셨으니까... 가서 인사부터 드립시다.”


의장실과 부의장실을 비롯한 각 의원들의 사무실은 건물 3층에 있었다. 3층 로비 중앙 벽면 상단에는 일곱 명 의원들의 이름이 적힌 전광판이 걸렸고, 각 이름 아래에는 재실/부재 글자가 각기 파란색/빨간색으로 따라붙어 있었다. 기은석 의원과 장세연 의원의 방은 나란히 붙어 있었다. 기은석 의원이 재실 중임을 확인한 의사팀장이 방문을 노크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자 기은석, 장세연 두 의원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두 분 같이 계셨네요. 오늘 자로 새로 의회에서 일하게 된...” 고개를 돌려 세 사람을 올려보던 기은석이 이지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어?!!!” 이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 의미를 알아챈 건지 기은석은 이지를 다시 만난 반가움을 얼른 접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


“잠깐 앉아서 같이 차 한 잔 하시죠?” 장세연 의원이 기은석 의원의 소파 옆자리로 건너 앉으며 둘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 그럼 천천히 말씀 나누세요. 저는 사무실에 가 있겠습니다.” 의사팀장이 나가고 어색한 침묵이 잠시 흘렀다. 비서가 차 두 잔을 가지고 들어오자 기은석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자. 따뜻할 때 들어요. 반갑습니다. 저는 기은석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네...” 당황스럽고 얼떨떨한 기분에 사로잡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이지도 태연도 선뜻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 인연이란 참... 절친했던, 그러나 꼬여버린 인연이 되어버리고 만 고교 동창 두 여자와 함께 앉은 태연도 그랬지만, 바 손님으로 먼저 알게 되었던 기은석 의원까지 넷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된 상황을 각오는 하고 있었던 이지도 복잡하고 묘한 기분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사정없이 깬 것은 장세연 의원이었다.


“윗사람한테 먼저 자기소개하고 인사하는 것 안 배웠어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세연의 목소리에 가장 당황한 것은 기은석 의원이었다. “아니... 의원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여기 위아래가 어딨습니까? 다 같이 서로 도우면서 일하는 거죠.”


“아. 죄송합니다. 새로 발령받은 속기 9급 안이지 라고 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장세연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이지가 또박또박, ‘속기 9급’ 네 글자를 스타카토로 탁탁 끊으며 힘주어 말하면서 크게 대답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두 여자는 서로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눈싸움을 벌이듯 둘은 서로의 시선을 먼저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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