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가 된 가가멜의 재산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42화

by rainon 김승진

세연 가슴에 핀 장미를, 태연의 혀와 입술이 정성껏 어루만졌다. 틈새. 살짝 열린 침실 창문 틈새로, 하루를 적시다 지쳐 잠든 빗방울의 잔향이 밀려 들어왔다. 틈새. 두 젊은 남녀의 거친 숨소리가 늦여름과 초가을의 틈새를 채우고 있었다. 틈새. 습기를 가득 머금은 밤공기의 저 끝 구름 틈새로 슬며시 달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틈새. 세연의 가슴에 핀 장미를 탐하던 태연의 입술이 아래를 향했다. 세연의 가장 은밀한 그 틈새에 태연의 혀끝이 수줍게 닿았다. 그렇게... 밤과 새벽을 잇는 틈새 속에서 태연과 세연은 하나가 되었다.


태연과 세연이 서로의 몸속으로 녹아드는 새벽 1시. 텅 빈 빈소는 적막했다. 조문객이 많이도 오기는 왔나 보다. 마른 수건으로 안명훈의 영정에 하루 사이 쌓인 먼지를 닦아내면서, 이지는 아버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세월 속에 쌓인 미움은 결국 녹아내리지 못한 채, 갈 곳을 잃고 마음 깊이 그대로 묻히게 되었구나. 살아있던 아버지보다 가버린 아버지가 더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마음이 던지는 미움마저 닿을 수 없는 저 멀리 떠나버린 아버지의 사진 위로 툭. 가슴 안으로만 느리게 흘러 고이던 슬픔이 딱 한 방울 넘쳤다. 사진 속 안명훈의 눈에 떨어진 물방울을 닦고 이지는 전화기를 열었다. 태연이 보내온 녹음 파일 두 개. 목소리는 같았다.


“이 벌레 같은 새끼야! 은혜를 원수로 갚아? 너한테는 새꺄! 공기도 사치다! 배은망덕한 짐승 새끼는 숨 쉴 자격 없어!”


“이것 봐요. 봉술이 형! 나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어. 그런데 이게 뭐야? 사람이 죽어버렸잖아! 난 이렇게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엉? ...... 형님 덕분에 내가 살인자가 됐다고요!!!”


제아무리 손가락이 빨라도 혓바닥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한다. 그래서 속기의 기초는 녹음. 그리고 속기사가 되기 전에 바텐더였던 이지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의 대화를 항상 녹음했다. 기억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기록뿐. 술떡 속 앙꼬가 된 진상 취객들은 절대로 자신이 싸지른 언행을 기억도, 인정도 하지 않기 때문... 핸드폰의 녹취 기능은 지방 소도시 조그만 술집 바텐더가 스스로를 지킬 방패였다. 속기사이기 이전에 바텐더였던 이지에게 스마트폰은 전화기 이전에 녹음기였다. 몸에 밴 습관. 낮에 만났던 가가멜, 우리신문 정재호 국장과의 대화도 이지의 핸드폰 속에 담겨 있었다.


“이런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경찰 수사도 별 진전이 없다고 하네요. 워낙 외진 곳이라 그 근처에는 CCTV도 없고... 날도 더운데 장갑은 물론이고 온몸 전체를 꽁꽁 싸맨 건지, 폭행범들의 지문은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했다는군요. 범행 직후 도주에 이용하고 버린 차량도 가짜 번호판이었고... 치밀한 놈들이더군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안명훈 씨에게 린치를 가한 놈들의 배후가 박봉술이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습니다.”


문자 메시지. 수신인 정재호 기자. 이지가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렸다.


“안이지 입니다. 밤늦게 죄송해요. 재산 두 배로 늘어난 것을 축하드려요. 낮에 잠깐 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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