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실종시켜 줘

[소설] 6월의 애벌레 – 제43화

by rainon 김승진

“이런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하지만... 경찰 수사도 별 진전이 없다고 하네요. 워낙 외진 곳이라 그 근처에는 CCTV도 없고... 날도 더운데 장갑은 물론이고 온몸 전체를 꽁꽁 싸맨 건지, 폭행범들의 지문은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찾지 못했다는군요. 범행 직후 도주에 이용하고 버린 차량도 가짜 번호판이었고... 치밀한 놈들이더군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안명훈 씨에게 린치를 가한 놈들의 배후가 박봉술이라는 데 전 재산을 걸 자신이 있습니다.”


문자 메시지. 수신인 정재호 기자. 이지가 핸드폰의 자판을 두드렸다.


“안이지 입니다. 밤늦게 죄송해요. 재산 두 배로 늘어난 것을 축하드려요. 낮에 잠깐 뵙죠.”


새벽 1시 30분. 시 외곽에 위치한 한산타임즈 사무실 불은 꺼져 있었다. “똑똑” “들어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거기 놓고 가. 수고했어.” 현병규 시장의 수행비서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자, 박봉술은 쇼핑백을 열었다. 5만 원 권 100장 묶음 20개. 그중 6개를 꺼내서 책상 아래 이중 금고에 던져 넣은 박봉술은 7천만 원이 든 쇼핑백을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박봉술은 새벽 드라이브를 좋아했다. 열린 운전석 창문을 타고 들어와 뺨을 때리는 검은 밤공기의 촉감을 즐기며 박봉술은 시 외곽을 벗어나 낚시터로 차를 몰았다. 아무도 없는 낚시터 앞 공터에 포터 트럭 하나가 서 있었다. 박봉술은 쇼핑백을 들고 포터 트럭 조수석 문을 열었다. 트럭 안은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날도 선선한데... 차 문 좀 열고 피울 것이지.” 인상을 찌푸리며 박봉술이 차창을 열었다. 그런 박봉술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운전석의 남자는 쇼핑백부터 열었다. 돈다발 개수를 센 남자가 키득거렸다.


“여전하구나. 곶감 나르면서 빼 처먹는 버릇은. 야! 축의금, 부의금도 5, 10 단위로 끊는다. 칠천? 삼천이나 잘라 쳐드시냐?” “여기까지 배달 온 기름 값이라 생각해라. 칠천. 좋잖아. 럭키 세븐! 그래서? 안 할 거야?” “니 놈이 내 목숨 한 번 살려준 은혜 봐서, 내가 그냥 넘어간다. 대신 잠잠해지면 술 사라. 거하게.” “텐프로 룸방 하나 전세 내고 술독에 담가 주마.” “어떻게 잡아주면 돼?” “그건 니가 알아서 해. 삶든지 튀기든지. 단! 흔적 남기지 마. 양계장 분쇄기에 갈든, 드럼통에 공구리랑 비벼서 바다에 던지든, 불에 태우든... 꼭 실종시켜 줘.”


포터 트럭에서 내리려는 박봉술을 향해 운전석의 남자가 말을 던졌다. “그런데... 대답은 물론 안 하겠지만... 꼭 없애야 할 놈이야? 이번에는 무슨 사고를 친 거냐?”


“그렇게 됐다. 나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은 몰랐어. 근데 어쩌겠어? 방법이 없다. 이것밖에는. 그냥 계속 앞으로 가야지. 돌이킬 수가 없거든.” 트럭 조수석 문을 닫고 박봉술은 다시 자신의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제287회 한산시의회 제1차 정례회 셋째 날, 행정사무감사가 시작되는 날 아침. 6시. 먼저 잠을 깬 태연은 세연의 볼에 입을 맞추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침 먹고 가.” “오늘 행감 시작하는 날이잖아. 어제 장례식장에 있느라 야근도 못 했어. 가서 회의 준비해야지.” “그래도 밥은 먹고 가지...” “술 많이 마셨는데... 좀 괜찮아? 더 누워 있어. 먼저 출근할게.”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집에 가서 씻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나서려는 태연의 뒤로 그새 언제 왔는지 세연이 다가와 끌어안았다. “이따 의회에서 봐. 운전 조심하고. 사랑해.”


“의석을 정돈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방자치법」 제41조, 같은 법 시행령 제39조 및 「한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에 관한 조례」의 규정에 따른 한산시 행정사무감사 실시를 선언합니다. 땅, 땅, 땅!” 국회 국정감사의 축소판. 시 집행부 직원들도, 의원들도, 의회 직원들도 1년 중 가장 신경이 곤두서는 시즌. 한산시 행정사무감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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