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월의 애벌레 – 제52화
그 시각. 한산3동 주공 1단지 103동을 바라보며 주차된 차량. 조수석에 설치된 카메라는 1~2라인 출입구와 301호 전면 발코니를 한 프레임에 가두고 녹화 중이었다. 103동 301호 발코니 창. 불이 꺼졌다. “Exit Light~!!! Enter Night~!!! 불은 꺼지고~!!! 이제 뜨거운 밤이 시작되나?” 헤비메탈 그룹 Metallica의 광팬인 한산타임즈 기자 최수환이 “Enter Sandman”을 흥얼거리며 전화기를 열었다. “접니다. 지금 아파트 불 꺼졌는데요... 네, 그 사이에 둘이 밖으로 나오진 않았습니다...... 저, 국장님. 내일은 일요일이고, 뭐... 밤 동안에 둘이 밖으로 나올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저 좀 들어갔다가 내일 아침 일찍 다시 나오면 안 될까요? 국장님...... 아! 감사합니다! 내일 5시까지 꼭 나와서 잠복 계속하겠습니다.”
자택 거실. 부하 기자와 통화를 마친 박봉술은 문자 메시지함을 열었다. 잠들기 전, 하루 동안의 통신 기록을 다시 살펴보는 것은 박봉술의 오랜 습관이었다. 발신인 강혁찬 시청 감사담당관. “형님. 장세연 의원 집은 한산3동 주공 1단지 103동 301호구요. 말씀하신 직원 유태연 사진 보내드립니다.” 수신인 최수환 “103동 301호. 장세연 시의원이랑 같이 들어간 남자 사진이야. 둘이 같이 드나드는 시각, 아파트 불 꺼지는 시각. 정확히 기록하고 찍어.”
테이블에 전화기를 내려놓은 박봉술이 맥주 캔을 따려는 순간, 전화기가 울어댔다. “어떻게 됐어?”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차분했다. “깨끗하게 고이 보내드렸다. 미션 클리어.” “수고했어. 고맙다.”
꿀꺽꿀꺽. 꺼억! 목구멍을 넘어가는 맥주의 차가운 바삭함을 즐기며 박봉술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왜 감히 나한테 덤벼들어서 제 명을 재촉했냐. 정태야... 이 맛있는 맥주 맛도 더는 못 보고 말이야. 잘 가라. 김정태.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박봉술이 키득거렸다. 우리신문 정재호, 그 가가멜 자식이랑 안이지가 뭘 어떻게 한다고 해봤자, 이젠 증거가 없다. 정태가 실종된 것을 알게 되면, 나머지 두 놈은 저절로 얌전해질 것. 그런데... 왜?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커져 버린 걸까... 캔에 남은 맥주를 한 번에 죄다 들이켜고 박봉술은 침실로 향했다.
또 다른 침실. 103동 301호. 침대 위. 태연 위에 올라탄 세연의 얼굴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이스크림이 된 태연. 자신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감싸는 입술과 혀끝의 부드러움 끝으로 태연의 몸이 움찔거렸다. 지금이야. 세연의 얼굴을 다시 위로 끌어당겨 입을 맞추며 태연은 침대 옆 서랍을 열었다. 탁! 태연의 손을 치우면서 세연이 서랍을 닫았다. “아직 안전한 날이야. 그냥 해. 너랑 나 사이를 뭐가 가로막는 거, 나 싫어. 그게 뭐든.”
하나가 된 몸, 함께 오르는 호젓한 산길. 초가을 밤 에어컨, 숨이 거칠어지는 둘의 땀을 식히는 고마운 부채질. 에어컨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길가 나뭇잎들의 파닥거림. 가쁜 호흡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둘이서 손잡고 올라선 정상. 절정의 탄성과 함께 밀려드는 행복한 극치감은 커다란 비눗방울이 되어 태연과 세연을 보듬어 안았다.
오늘은 정사(情事) 도중에 이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다행... 이라고 생각하자마자, 태연의 머릿속으로 이지가 들어왔다. 바로 전날, 이지와의 통화가 떠올랐다.
“아. 이지야. 폭행사건 현장에서, 그리고 어제 내가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녹음한 그 범인 목소리 있잖아. 거기 나오는 박봉술이라는 이름 있지? 그거 한산타임즈 신문사 기자인 것 같아. 그놈이 배후가 분명한...”
“알고 있다구.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 녹음 파일들 그냥 지우고, 넌 신경 꺼. 말했지만, 경찰에 신고할 생각은 말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끊어.”
신고하지 말라고? 이 결정적인 증거를? 이지는 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 거지? ...... 복잡해지려는 태연의 생각을 세연이 단칼에 잘라냈다. “벗어!”
“뭐???”
“벗으라구!”
“벗고 있잖아. 지금... 뭘 더 벗으라는 거야?”
“니 마음. 니 마음도 다 벗으라구. 내 앞에서는 아무것도 가리려 하지 마! 딴생각하지 마!”
“딴생각은 무슨...” 속으로 뜨끔하면서 태연은, 살짝 토라지려는 세연을 다정하게 끌어안았다. 세연의 가슴에 피어난 들장미 문신을 어루만지며 태연은 장미꽃잎 사이로 부풀어 오른 분홍 꼭지를 살짝 깨물었다. 세연의 입술을 비집으며 가느다란 신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밤은 길고, 그리고 뜨거웠다. 그렇게 103동 301호를 채운 공기가 다시 데워지고 있을 때...
이지의 아파트 안은 차가웠다. 핸드폰 속 녹취파일 3개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고 안명훈의 딸, 이지의 눈동자에서는 투두둑, 얼음 조각들이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