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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May 10. 2022

황포돛배

[소설] 가브리엘의 오보에 - 1화

강 건너 섬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강 한복판에 솟아 있는 작은 섬을, 사람들은 하늘섬이라고 불렀다. 섬 꼭대기 동쪽과 서쪽 양편에는 바위 봉우리가 엇비슷한 키로 불쑥 자라나 있었다. 그 모양이 꼭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아 섬은 하늘섬이 되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섬에 조그마한 공동묘지가 자리하고 있기에 ‘하늘로 간 자들의 섬’이 줄여진 이름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늘이 자신의 영혼을 거두어 간 이유와 상황이 무엇인지, 강둑 아래 물풀에 휘감긴 사내는 말이 없었다. 강바닥을 내려보며 엎드린 시신을 건져 올린 구조대원이 강둑 위를 향해 소리쳤다. “사망! 중년 남자! 빠진 지 하루나 이틀 된 것 같아요!”


“나 지금 바빠. 나중에 얘기해. ...... 아, 글쎄! 알았다니까! 내가 뭐 내 새끼 밥값 책값 일부러 안 보내겠어? 깜빡했다니까! 오후에 보낼게! 끊어! 아, 잠깐만! 너 행실 똑바로 하고 다녀라. 준철이한테 다 들었어! 어디서 남자를 집으로 들여? 분명히 말했어! 새 시집가고 싶으면 준철이 나한테 도로 보내!”


탁! 전화기를 닫은 박 팀장이 강둑 아래로 내려섰다. “여기 가까이 오시면 안 돼요! 저쪽으로 좀 물러나시라고요!” 몰려든 구경꾼들을 물리치던 최 경장이 붙이는 경례를 대충 받고, 박 팀장은 흠뻑 젖은 시신 가까이 다가갔다.


“외상은 없어 보이는데요. 단순 실족사이거나, 스스로 뛰어들었거나, 아니면.”

“부검해 보면 알겠지. 신원은?”

“팀장님. 저기 저쪽에.”

최 경장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쪽으로 박 팀장이 시선을 돌렸다. 한 서른 명 정도 탈 크기나 될까. 오십 미터쯤 떨어진 선착장에는 황포돛배 한 척이 강물 위에서 태평스럽게 둥실거리고 있었다.


“선장이랍니다. 저기 섬으로 오가는 돛배 선장이요.”


이제 보니, 시체 주위 구경꾼들 대부분이 돛배를 기다리던 승객들이었다. 가끔이나 자주, 많게는 매일 마주쳤을 선장의 시신을 눈앞에서 본 사람들은 충격이 큰 것 같았다. 호기심으로 기웃거리려는 어린 아들의 눈을 가려 막은 어느 젊은 엄마는 울고 있었다. 몇몇 이들의 흐느낌 사이로, 당장 하늘섬으로 오늘 넘어가야 할 사람들과 물건들의 난감함이 한데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크고 낮은 목소리들 여럿이 섞인 웅성댐이 박 팀장의 귓구멍으로 들어가 골을 흔들어댔다. 지난밤 마신 술에 아직 잠겨 있는 뇌가 좌우로 기우뚱거리면서 박 팀장은 멀미 기운을 느꼈다. 한숨을 길게 토하며 강둑 위로 시선을 멀리 날리는 그때, 박 팀장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깜빡거렸다. 귀신이야? 뭐야? 눈꺼풀을 따갑게 찌르는 아침 햇살을 손부채로 쳐내며, 박 팀장의 두 눈은 초점을 잡으며 강둑 위를 응시했다. 여자다. 젊은...


흰옷을 입은 여자가 강물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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