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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May 19. 2022

경찰서장이랑 친하신가요?

[소설] 가브리엘의 오보에 - 7화

사무실에서 챙겨 온 선장 집 열쇠를 꺼내려다 박 팀장은 멈칫했다. 잠겨 있어야 할 선장 집 현관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곤두서려는 신경을 가라앉히며, 박 팀장은 온몸의 근육을 가볍게 긴장시켰다. 숨소리와 발소리를 죽이면서 열린 현관문 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다가,


쿵! 눈앞에 번쩍이는 번갯불을 미처 느끼기도 전에, 박 팀장은 계단 아래로 굴렀다.


현관문을 무기로 박 팀장을 제대로 가격한 남자가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2층과 3층 사이 계단참에 나자빠져 있던 박 팀장은 남자의 오른쪽 다리를 휙 잡아챘다. 예상치 못했을 박 팀장의 반격에 남자도 그대로 박 팀장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몸을 일으킨 박 팀장은 남자의 오른팔을 뒤로 사정없이 꺾었다. 악! 비명과 함께 남자는 몸에서 힘을 빼고 더는 저항하지 않았다.


수갑을 꺼내 남자의 오른쪽 손목에 걸자, 남자가 욕설을 뱉었다. “더러운 짜바리 새끼! 이 개새끼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아들이 아버지 집 온 게 죄냐? 이 개새끼야!!!”


“우리 아부지 개 아니거든. 함부로 욕지거리하다가는, 너 혓바닥 잘린다. 일어서!”


박 팀장은 선장 아들을 앞세워 계단을 올라 선장 집으로 들어섰다. 아침에 서에서 봤던 선장 사진과 닮은 걸 보니, 아들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경찰이야. 뭐 훔치거나 너 해칠 생각 전혀 없어. 얌전히 있을 거면 풀어준다. 근데 너 몇 살이야?”

“스물여섯... 이요.”

“내가 너보다 다섯 살 형이야. 말 편하게 한다. 불만 있으면 지금 말해.”


선장 아들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 팀장은 수갑을 풀어주고는 선장 집 거실 낡은 소파에 앉았다. “너도 와서 앉아.”


잠시 선장 아들의 두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박 팀장은 소파에 앉은 채로 집안을 휙 둘러보았다. 전형적인 늙은 홀아비의 가난한 집 그 자체였다. 박 팀장은 소파에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었다. 언제 담근 건지 가늠이 안 되는 신김치가 반쯤 담긴 투명 밀폐용기, 달걀 두 알, 그리고 막걸리 두 병, 생수 한 병이 전부인 냉장고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터져 나왔다. 싱크대 옆에는 역시나 언제 사 둔 건지 짐작이 어려운 커피 믹스 몇 봉이 먼지를 이불 삼아 자고 있었다. 박 팀장은 주전자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머그잔 두 개를 찾아 꺼내 커피를 뜯어 붓고, 박 팀장은 소파로 돌아왔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그걸 꼭 말해야 해요?”

“하고 안 하고는 니 자유지. 근데, 마찬가지야. 널 패고 안 패고, 그것도 내 자유야.”


선장 아들이 박 팀장을 노려보았다.

“역시나. 여기 시골 경찰들은 다 썩을 대로 썩어서. 아버지 말이 다 맞아.”

“나도 여기 시골 경찰들 별로 맘에 안 들어. 나 여기로 온 지 이제 4일 됐어. 근데 네 아버지가 뭐라고 했길래 그러는 거야?”


“정말이에요?”

“뭐가? 눈깔에 힘 빼고 말해.”

“여기 경찰서로 온 거, 4일밖에 안 됐다는...”

“그래. 나도 여기 머리털 나고 처음 온 거야. 지도에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어.”


찢을 듯이 박 팀장을 째려보던 남자의 눈빛이 살짝 누그러졌다. 그때, 가스레인지 위 주전자가 칙칙 콧구멍으로 김을 뿜으며 뚜껑을 달그락거렸다. “가서 커피 가져와.”


박 팀장 앞에 머그잔을 내려놓고 선장 아들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두 사람은 호호 입으로 불며 뜨겁고 다디단 커피를 마셨다. 벽시계 바늘이 12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배가 고프니 믹스 커피는 꿀맛이었다.


“아버지 죽인 놈, 잡았어요?”

“아직. 근데, 잡아야지.”

“전 누군지 알아요.”

“그게 누군데?”

“...... 내가 형사님을 믿어도 될까요?”


딱히 적당한 대답이 바로 떠오르지 않은 박 팀장은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네가 믿거나 말거나, 그건 네 사정이고. 난 범인 잡는 대가로 밥 벌어먹는 놈이야. 나는 잡아야겠어. 꼭. 참고로.”

잠시 뜸을 들이며 선장 아들의 눈을 보다가 박 팀장이 말을 이었다.

“부검 결과나 이런저런 정황으로는 타살은 아니라고 보고 있어. 서에서는.”


“형사님은요?”

“난... 네 아버지가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봐. 그래서 이 집에 온 거야.”


“...... 경찰서장이랑 친하신가요?”

박 팀장의 눈이 빛났다.

“안 친해. 아직은. 그러니까 내가 서장이랑 친해지기 전에 어서 말해봐. 니가 아는 걸.”


선장 아들은 머그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에 깍지를 끼었다.


“아버지랑 연락 끊고 살았어요. 2년 전부터. 특별히 원수진 일도 없었는데, 아버지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찾아오지 말라고. 전화도 안 받더라고요. 그러다 작년엔가는 아예 핸드폰을 끊어버렸고. 저도 먹고살기 바쁘고 빠듯하고, 솔직히 아버지한테 정도 별로 없었고, 그래서 그냥 남남처럼 살았었죠.”


계속 얘기를 해보라는 눈짓으로 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난주 목요일에, 모르는 번호로 밤에 전화가 왔어요. 공중전화 같았어요. 아버지 전화였어요. 2년 만에.”


고 안칠성 선장 아들의 기억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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