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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May 23. 2022

부자(富者)가 아닌 부자(父子)의 마지막 통화

[소설] 가브리엘의 오보에 - 8화

계속 얘기를 해보라는 눈짓으로 박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난주 목요일에, 모르는 번호로 밤에 전화가 왔어요. 공중전화 같았어요. 아버지 전화였어요. 2년 만에.”


고 안칠성 선장 아들의 기억은 일주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피자가게 배달 일을 마치고 고시원으로 돌아온 안현태는 쪽방 좁은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 몸을 씻을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TV 리모컨을 든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누구세요?”

“현태야. 나다.”

“?????? ...... 아버지? 아버지예요?”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미안하다. 애비가...”

“잘 있었어요? 계속 연락도 안 되고... 근데 무슨 일로...”

“내가, 그, 저, 있지?”

“네?”

“현태야. 내가 지금 좀 사정이 그래.”

“무슨 일인데요?”


원래 어눌했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더 알아듣기 힘들게 늙어 있었다. 안현태는 직감했다. 2년 만에 전화를 건 아버지는 그저 안부나 묻자고 수화기를 든 게 아님이 분명했다.


“저기, 있지. 현태야.”

“네. 듣고 있어요. 얘기해요.”

“난 절대 자살은 안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내가, 내가 죽지는 않아.”

“아버지. 대체 무슨 일이에요? 죽다뇨?”

“돈을... 돈을 못 갚고 있어.”

“돈이요? 빚이요?”

“어. 그래, 그래 빚이야. 내가 첨에 시작을 말았어야 했는데... 뭐에 씌었나. 딸 땐 많이 땄어.”

“네? 아버지 도박... 해요?”

“응. 근데, 이놈들 무서운 놈들이야. 나 죽일지도 몰라. 그래서 말인데. 현태야.”


그제야 안현태는, 2년 만에 아버지가 전화를 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대답도 뻔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동안 연을 끊고 지낸 부친에 대한 정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자신도 하루 벌어 반나절 먹고사는 처지인 아들은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차갑게 얼렸다.


“아버지. 나도 살기 힘들어요. 돈 없어요. 정말로.”

“그래. 그렇지? 그래, 그래. 미안하다. 응.”


몇 초 동안, 수화기 너머도, 이쪽도, 부자는 말이 없었다. 2년 만의 통화. 아들은 이 상황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면서도, 아버지가 그리고 스스로가 불쌍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혹시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현태야.”

“네...”

“여기 경찰들 절대 믿으면 안 돼. 경찰서장. 무서운 사람이야. 힘이 세, 아주. 그리고.”

“...... 네.”

“내가 말이지. 난 절대 안 죽을 거야. 그래도, 그래도 혹시...”

“......”

“네 엄마 반지는 꼭 찾아가야 한다. 알았지? 꼭 찾아가야 해!”


“저기, 아버지! 아버지! 잠깐만요!”

“뚜, 뚜, 뚜...”

아들의 마지막 말이 끝나기 전에, 가난한 부자(父子)의 마지막 통화는 멎었다.


안현태 핸드폰의 스피커도 조용해졌다. 통화 녹취를 다 들은 박 팀장이 명함을 건넸다. “이 번호로, 그거 녹음 파일 보내.”


명함을 받아 든 안현태는, 박 팀장의 눈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반지는? 무슨 말이야?”

“엄마는 한참 전에 죽었어요. 아마 유품인 것 같아요. 결혼반지인 건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본 적 없어요.”


박 팀장이 고개를 상하좌우로 돌리며 선장의 집을 눈으로 훑었다. “이 집 안에,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거 찾으러 온 거야?”

“네. 장례도 치러야 하고 겸사겸사... 근데, 3시간이 넘게 집을 다 뒤져도 못 찾았어요.”


코를 킁킁대듯, 박 팀장의 눈초리가 소파 앞 낡은 나무 탁자 위를 꼼꼼히 걸었다. 잠시 후, 네모나고 기다란 나무 테이블의 한 곳에서 그의 시선이 멈췄다. 그냥 보면 무심코 지나칠 정도로 희미했지만, 테이블 구석은 다른 곳보다도 좀 더 닳아 있었다. 갈색 니스칠이 아주 살짝 더 바래고 벗겨진 자리를 물끄러미 향하던 박 팀장의 눈이 바로 위 천장을 바라보았다.


“드라이버, 어디 있을 거야. 찾아와.”

선장 아들이 공구함을 여는 동안 박 팀장은 거실 테이블 위에 올라섰다. 천장 여기저기를 손으로 두드리던 박 팀장이 안현태에게서 건네받은 드라이버로 천장 석고 텍스를 뜯었다. 네 귀퉁이 중에 세 번째 나사를 풀자, 솜처럼 뭉친 먼지 덩이와 함께 툭.


나무 상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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