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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on May 25. 2022

오보이스트 지망생?

[소설] 가브리엘의 오보에 - 10화

왠지 낯익은 뒷모습의 남자가 등을 진 채 서 있고, 그 앞에는 뱀, 사슴, 용, 호랑이... 목과 팔뚝에 동물원 풍경을 알록달록 새긴 덩어리 사내 셋이 고개를 숙인 채 얌전했다. 뭔가를 훈계라도 하는 듯, 덩어리 건달 세 명에게 소리를 지르는 남자의 목소리는 빗줄기에 막혀 들리지 않았다. 그 낯익은 뒷모습이 누구인지를 박 팀장이 알아차리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갑자기 최 경장이, 자기 앞에 다소곳이 선 문신 덩어리 셋의 따귀를 차례차례 사정없이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술집 골목. 덩치 큰 건달 셋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묵묵했다. 문자 그대로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두들겨 맞고 있었다. 제 화를 못 이긴 듯, 최 경장은 그중 맨 오른쪽에 서 있던 가장 커다란 호랑이 문신을 자빠뜨리고는 아예 짓밟고 있었다.


‘적당하고 착한 부사수 형사’는 저놈의 망토였다. 시선을 그쪽으로 향한 채로, 박 팀장은 비닐 재질 장우산 하나를 집어 계산대에 올렸다. 편의점 사장이 바코드를 찍으면서 박 팀장의 눈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반쯤 벗어진 중년 사장이 혀를 끌끌 찼다. “저거, 저거, 저 새끼 또 시작이다. 에구구. 개는 똥을 못 끊지. 시험 봐서 순사 됐다고, 그 천성이 어딜 가나?” 순간 박 팀장은 최 경장에 관해 편의점 사장에게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얼른 그 생각을 접었다. 형사2팀 부사수, 지역 토박이 최 경장이 대략 어떤 인간인지는 파악됐다. 이제 조심할 것은, 내가 저놈을 간파하기 시작했다는 걸 저놈은 몰라야 한다는 것. 박 팀장은 다시 코너를 돌아서 반대편으로 난 편의점 정문을 열고 비닐우산을 펼쳤다.


경찰서 주차장에 이르자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시동을 끄고, 박 팀장은 운전석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는 눈을 감았다. 세 시간 전이 생각났다. 핸드폰을 꺼내어 음원 사이트를 열었다.


<가브리엘의 오보에> 오전, 하늘섬 공동묘지 하늘 아래를 적셨던 그 선율의 향기가 되살아났다. 어린 딸의 무덤가를 찾아 오보에로 그 곡을 연주한 피아노 여선생의 하얀 얼굴과 까만 머리칼이 눈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차 안을 가득 채운 오보에 소리가 심장 어딘가를 후벼 파는 느낌에, 박 팀장은 나직한 신음을 토했다. 흔할 정도로 유명한 그 멜로디가 왜 이렇게 아픈 거지? 음악을 끄고 차에서 내리다, 박 팀장은 다시 또 자신의 눈가가 젖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퇴근 시간이 됐다. 막 세수를 마친 말간 하늘을 닦아주려는 수건처럼, 땅에서는 무지개가 폭신하게 솟아났다. 원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박 팀장은 어제처럼 어슬렁거리며 읍내 구경에 나섰다. 단조롭고 한산한 읍내는 골목 구석까지 찬찬히 들여다봐도 한 시간 반이면 충분했다. 혼자 저녁을 해결할 만한 식당 대여섯 곳 위치를 머릿속에 입력하며 걷던 박 팀장의 눈에, 피아노 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박 팀장은 발을 멈추고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는 골목 쪽을 바라보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그 골목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둑했다. 하지만 여선생에게 치근덕거렸던 경찰서장은 오늘은 없었다.


건물 1층, 피아노 학원 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무엇에 홀린 듯, 박 팀장은 학원 건물로 가까이 다가갔다. 학원 1층 현관문에 바짝 다가서는 박 팀장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스스로가 괜한 짓을 하고 있고, 따라서 발길을 돌려야겠다는 문득 자각은, 그러나 한 발짝 늦고 말았다.


현관문이 덜컥 열리고, 피아노 여선생이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경찰대 시절 포함 12년 차 경찰 박원석 경감은, 경찰이 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피의자가 된 기분에 휩싸였다.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당혹스러움이 전기처럼 흘러내렸다. 순식간에 감전된 채로, 박 팀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무슨... 일이시죠? 누구세요?”


피아노 여선생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단아했지만,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었다.


나름 임기응변에는 능하다고 생각했던 스스로의 확신이 무너지고 있음을 감지하면서, 박 팀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구시죠?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 박 팀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보세요. 무슨 일이시길래.”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저. 악기를 배우고 싶어서요.”


“네?”


“저. 오보에를 좀 배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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