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빗방울

새벽

by rainon 김승진

새벽,

빗방울 비린내 치지직 지지면서

한숨처럼 떠오르는 푸른 연기가

오늘따라 더 때깔 곱구나


반 갑으로 줄이고 나니 담배는 더 맛나네

없는 돈 아끼고 건강해진다면 일타쌍피 아닌가

좋게 생각해야지 어쩌겠어

서러워 한다고서 십원 한 장 안 생기더라


사무소 건너편 국밥집 간판에 불 들어온다

오늘은 좀 늦었네


국밥 값 천 원 올렸다고 발 끊은

쩨쩨한 단골 알아볼 주인 여자 눈 마주칠까 봐

얼른 몸을 돌리다가

소매 깃 기름때 위로 물든 시커먼 간장 국물이

아주 잠깐 창피하다


찬밥에 간장 비벼 먹고 집 나선 지도 아흐레

몇 개 없는 조미김은 두 여자 먹으라고 안 뜯었다


친구들은 다 있다고, 왜 나만 안 사주냐고

아이폰인지 뭔지에 속상한 딸아이

생일이 다음 달인가

그때까지 몇 번이나 더 봉고에 탈 수 있을라나


한 대만 좀, 미안해하며 굽신거리는 김 형에게

한 가치 뽑아 건네는 내 손이 더 안타깝다


능력 없으면 끊어

민망함 덮으려 던진 핀잔에 속없이 웃는

그래, 당신 속도 말이 아니겠지

라이터 돌려받으며 김 형에게 물어본다

박 씨는 요새 계속 안 보여, 무슨 일 있나?


못 들었어? 허리 나갔다잖아

아니, 곰방꾼이 허리가 나가? 허허 참

이제 일은 다 한 거지, 뭐, 그보다도 큰일이야

왜 또?

아니, 그 집 아줌마도 병원에 있다잖아

부부가 쌍으로? 어쩌냐

아픈 지 꽤 됐다더만, 애들도 아직 어린데


그리고 둘 다 말이 없다


오늘도 둘 다 일이 없다


시끄러운 속보다 더 무거운 침묵을 지지면서

푸른 담배 연기가 비틀비틀 떠오른다


비는 그쳤다

저 멀리 고층 빌딩, 그 사이로

해가 떠오른다


비에 젖은 새벽을 찢으며

붉은 해가 고개를 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