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불편한 주제네요. 의사의 입장에서만 말하면 공감을 얻기가 어렵고, 반대의 입장에서 말하면 한 명의 의사로서 자기부정이 될 테니까요. 가능한 정치적인 논지로 접근하지 않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저는 이제 아주 젊은 의사는 아닙니다. 후배들이 많이 입학했고, 앞 서 얘기한 어려운 과정을 묵묵히 수행하여 의료계를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는 높은 수준의 의료로 여러 나라가 부러워하는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사들만의 노력도 아니고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산물도 아닙니다. 한국 의사들은 대부분 이 의료체계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큰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물론 개개인이 숭고한 희생을 바탕으로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고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겠지만 진보된 자본주의-민주주의 사회는 어떠한 개인의 희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값싸고 질 좋은 의료체계는 배움의 과정이라는 이유로 전공의, 전임의 같은 상대적 약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재가 이제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의사가 더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의사의 입장도 정부의 입장도 공고합니다. 가능한 데이터를 가지고 합리적인 의견이 도출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에 대한 제 의견은 보류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것을 추진하는 방식에 있어서 마찰이 생겼습니다.
의사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현명히 전달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목소리를 내면 직역이기주의로 비치는 상황에서 아예 소통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다가 결국은 강하게 얻어맞았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의 방식은 문제에 대한 답을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따르기를 강요했습니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일방적인 희생과 그것을 진행하기 위한 과정을 프레임 씌우기로 느낀 의사들은 협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개인적으로 갈등이 극심하던 시기에 제 자리와 중심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부로부터 무작위로 받은 업무개시 명령이나 치료를 받으면서도 불신을 보이는 환자와 보호자를 대할 때면 마음이 약해지고는 합니다.
의사들은 오랜 시간을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불행히도 개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과 의사로서의 나를 잘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들은 나쁘다. 이기적이다. 건강보험 재정에 악영향을 주는 나쁜 존재라는 식의 프레임을 의사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끝나지 않고 본인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젊은 의사들은 더 합니다. 이제 막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하려고 하는데, 펼치기도 전에 나쁜 존재로 규정되었습니다.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힘든 일은 하고 싶지 않은 합리성이 필요한 지금 세대에게 힘든 일을 가야 할 목표를 뺏어버린 게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갈등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습니다. 이 이야기가 읽히는 시점에서는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의료 행위는 정책적인 방향에서부터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 윤리적인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습니다. 그러나 일선의 의사들에게는 눈앞의 환자를 최선을 다해 보는 것과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