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의사들은 그 세상에 어울리는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저한테 익숙한 두 번째 질문에 먼저 답을 해보겠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의사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면허제도입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흔히 사짜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노무사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자격을 취득하려면 의과대학 졸업과 의사시험 합격이라는 자격이 필요하고 어느 날 갑자기 의사가 많이 필요해졌다고 해도 물리적으로 한꺼번에 양질의 의사를 배출할 수 없습니다. 이번 의대정원 문제에서도 당장 의사가 필요하다면, 의과대학 정원을 늘린다 한들 전문의가 배출되는 시간과는 15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를 대비한다고 하면 갑자기 늘어난 정원을 수용할 의과대학도 병원도 없다면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국가가 면허를 통제하기 때문에 면허를 약점으로 잡히는 지금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장밋빛 전망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피할 수 없는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병원을 방문하는 의료이용은 태어나기 전후의 신생아 때 높았다가 건강한 10-20대를 거쳐서 나이가 들면서 급격하게 올라가는 U자형 곡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인 인구가 많아질수록 병원과 의사는 더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노인질환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의사는 앞으로 사회에도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의학은 상당히 보수적인 분야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가장 앞선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지만 충분히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에는 먼저 도입하기 어렵습니다. 뒤에서 세상의 변화를 다룰 예정이고, 의학도 다양한 변화 앞에 있습니다. 아마 AI 기술이 인간 의사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의학은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고 기술 단독으로 판단을 할 수도 없습니다. 사고의 위험 윤리적인 딜레마는 자율주행차와 비슷합니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무르익어도 어떤 상황에 어떠한 판단을 할 것인지 그 행동에 대한 누가 어떠한 책임을 질 것인지 하는 제도적인 문제, 환자들이 자신의 치료를 AI에게 언제부터 맡기길 희망할 것인지 하는 문제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꽤 나중까지 인간 의사의 역할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암울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제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AI 기술발전, 세상의 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의사인 것을 밝히지 않고 AI 분야에 대한 강연을 듣다 보면 의학과 의사에 역할에 대한 언급은 빠지지 않고 등장입니다. 의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직업이 과거의 역할을 유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저도 예전에 배웠는데 전문 분야가 아닌 안과질환 등에 대한 질문을 기습적으로 받으면 제대로 답변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정확한 답변은 아니더라도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맞나 확인하기 위해 Chat GPT에게 질문을 합니다. 알고 있는 내용을 환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활용합니다. 환자 수 준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줘 라는 요청이 추가되면 한결 쉬운 용어와 개념으로 설명해 줍니다. 기계가 읽어주는 것으로는 아직 고령의 환자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우니, 제가 한번 정리해서 설명합니다. 지금까지는 의사가 AI를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전문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하는 경우가 아직은 드물지 않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A라는 약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B란 약의 효과를 설명하면서 이름만 A라는 약으로 설명을 합니다. 완전히 잘못된 내용인데도 자연스럽게 설명을 이어가니 잘못된 투약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도 의사로서 아주 이상한 소리는 걸러낼 능력이 있으니 듣고 판단을 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이 활용한다면 위험한 상황이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불과 몇 년 후에는 이 정도 수준이 아닐 것 같습니다. 진단을 보조하는 장치들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발전합니다. 안저사진(눈 안쪽)을 찍어서 의사를 대신해 진단을 내리고, 환자의 목소리 패턴을 분석해서 당뇨를 진단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대장내시경 사진, 검진 xray를 분석해서 진단을 돕는 영상 기술은 현장에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이게 가능한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영상 분석을 AI가 더 잘할 수 있다면 영상을 분석하는 의사가 계속 필요할까요? 적어도 한 의사가 훨씬 많은 영상을 분석하고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를 이겼듯이, 의사와 AI 대결에서 이미 대부분의 의사들이 패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습니다.
건설 현장, 자동차 공장, 서비스직에도 휴머노이드 로봇이 도입되고, 창의력의 영역도 AI 가 더 앞선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기술은 지금 특이점을 넘어 급격히 발전할 예정입니다. 특정 영역에서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의사들도 변화에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금 알고 공부하는 지식이 15년 뒤에도 같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예전처럼 의사면허를 따면 평생 공부하지 않고 퇴직할 수 있는 시기도 아닙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던 것을 마지막으로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의과대학을 희망하는 수험생과 그들의 부모님들을 지금 의사가 좋아 보이고 좋은 직업 인지를 보고 선택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을 바쳐 의과대학 입시를 통과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출발하게 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단축할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지 고민해 보고 결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의사들에게도 감히 조언합니다. 지금은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한 번 쉬어갈 때 한번 더 고민해 보세요. 아직 결정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길이 있습니다. 환자를 대하고 치료하는 이 일은 어렵지만, 보람도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내가 처음 시작할 때 되고 싶었던 나의 모습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과 모두의 노력이 인정받는 사회를 희망하여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