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게으른 인간의 퇴직생활 5

by 모구리

남편은 집에선 나보다 더 게으르다. 과거로 돌아가 알콩달콩한 연애 초창기. 둘 다 백수일 때 썸을 타기 시작해서 연애 시작과 동시에 남편이 나보다 먼저 취직을 했다. 그 당시 남편 아니 남자 친구는 저녁 6시~7시에는 퇴근을 해서 집에 와 밥 먹고 씻으면 8시 30분 정도였다. 밤낮이 바뀌어버린 나란 인간은 오후 3시쯤 자취방에서 일어나 8시부터 전화통화할 생각에 신이 났다. 8시가 넘어 전화를 거는데


[띠리리리링~띠리리링~ 띠리리링.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연애 초창기의 이미지 관리로 전화를 무턱대고 여러 번 할 순 없어 두 번 정도 걸고 안 받길래 문자도 남겨봤더니 읽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한밤중인 백수의 아침에 문자가 울린다.


[잤엉♡]


아니 무슨 20대 중반의 남자가 8시~9시에 잠이 들다니...


이렇게 퇴근 후 밤시간에 전화통화가 되지 않은 게 세 번 정도 더 있었고 주변친구들에게 들었던 남자 친구스토리를 종합하여 생각해 보았다.


'퇴근하고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거나 밤을 새우면서 게임을 하느라 전화를 안 받는 것이다.'


'사귄 지 세 달밖에 안 됐으니 정들기 전에 헤어져야겠다.'


헤어지 긴 무슨. 결국 이렇게 같이 살고 있다.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보니 남편은 [잠의 총시간]이 뇌에 세팅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 불금에는 밤을 즐기다가 새벽 1시에 잠이 들어 다음날 11시에 일어났다. 요즘은 아침 8시쯤에는 깨는데 점심을 먹으면 침대에 공주처럼 누워 이불을 가지런히 덮고 낮잠을 주무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항상 모자란 시간만큼 몇 시간 동안이나 낮잠을 잔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남편이 낮잠 자는 시간만큼 나는 아이와 놀아줘야 했다. 맞벌이 시절이라 너무 억울해서 남편이 낮잠에서 깨자마자 둘을 놀이터튼 키즈카페든 가라고 밖으로 내보냈다.


남편은 로봇처럼 잠의 총시간이 세팅되어 있어 이제 나는 남편이 낮잠 자는 걸 예측도 한다. 남편이 어느 날 일찍 일어나서


"나 7시에 일어났다~ 내가 제일 먼저 일어났지. 하하하."


"당신은 오후 한 시에 다시 잠이 들것입니다. 삐리삐리."


"무슨 소리야~~ 나 오늘은 낮잠 안 자~"


잠시 후 한시


"쿨. 쿨. 쿨."


예측이 되니 화도 덜났다. 아이는 남편보고 잠만보 아빠라고 부른다.


그러나 요즘엔 또 다른 생각도 든다. 남편이 축 늘어져서 내가 덜 게을러 보이는 거지 사실 나도 게으른 에세이를 쓸 수 있을 만큼 게으른 사람이다. 만약 부지런하고 활동적인 사람을 만났다면...


나보고 게으르다 구박할 수도 있을 거고, 좀 더 움직이라고 잔소리할 것 같기도 하다. 오후시간에나 나가고 싶은 나를 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야외활동을 할 수 도 있고 나중엔 그런 내가 답답하다며 남편 혼자 나가버려 새벽에 들어올라나.


이렇게 생각하니 뭐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지금 남편에게 잔소리를 좀 줄이고 이 자리에서 행복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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