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하던 대바늘을 내려놓았다.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불만스러웠다. 지난주부터 실과 시간에 대바늘뜨기를 하고 있다. 선생님 도움으로 코를 잡고 목도리를 뜨고 있는 중이다. 기본적인 겉바늘뜨기지만 쉽지 않았다. 순서도 헷갈리는 데다 자꾸 코를 빼먹었다.
슬쩍 돌아보니 이소정의 목도리가 제법 길어져 있었다. 수시로 풀었다 다시 뜨느라 나의 목도리는 좀처럼 길어지지 않고 있다. 귀찮아진 나는 아예 구멍이 뚫린 듯 휑한 부분을 그냥 두고 막무가내로 짜깁기를 하듯 대바늘을 움직였다.
새삼 이소정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지한 표정으로 신중한 손놀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소정은 못 하는 게 없구나 싶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스케이트보드도 잘 타고, 뜨개질까지 잘하다니. 참, 배드민턴도 제법 잘 쳤고. 좀 어이가 없다.
나의 눈길을 느꼈는지 이소정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나는 얼른 눈을 돌려 뜨개질을 하는 척했다. 스케이트보드 타던 날, 이소정은 나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그 뒤로 아무 내색이 없었다. 물론 계속 말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긴 하지만.
사실 그날 이후로 나는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갔다. X-게임장 근처를 맴돌며 지켜봤지만 이소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스케이트보드 타러 오지 않는지 궁금했다. 다른 아이들이 보드 타는 것을 구경하다가 맥이 빠져 돌아서곤 했다.
‘스케이트보드 타러 이제 안 가?’
대놓고 묻고 싶어 이소정을 흘깃거렸다. 그때 뒤에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한눈파니까 코가 다 빠지지. 이게 뭐야? 구멍이 숭숭.”
선생님이 나의 목도리를 보고 인상을 썼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소정이가 승찬이 뜨개질 좀 봐주렴.”
선생님의 말에 이소정이 선뜻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내가 뜨고 있던 목도리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엉망진창인 목도리가 부끄러웠다. 이소정은 내 목도리를 보며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괜히 긴장되어 침을 꼴깍 삼켰다.
“네 번째 줄부터 다 풀어야겠다.”
“뭐? 말도 안 돼. 그럼 남는 게 없잖아.”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엉망이든 말든 나는 우선 목도리가 길어지길 원했다. 그런데 애써 뜬 걸 다 풀려고 하다니.
“잘 봐. 여기부터 코가 빠지고 들쑥날쑥하잖아.”
이소정이 보여 주는 부분을 보니 정말 그랬다. 내가 볼 땐 괜찮아 보였던 부분들까지 엉망이었다니. 이소정은 동의를 구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푼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소정이 무자비하게 나의 목도리 털실을 쫙 풀었다. 아, 아까워. 나는 쩝 입맛을 다셨다.
이소정이 대바늘을 바로 끼우더니 뜨개질을 시작했다. 꼼꼼하고 빠른 손놀림이었다. 나의 목도리를 뜨는 이소정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우리가 말을 다시 텄구나 싶었다. 마음이 슬며시 놓이는 건 왜인지.
이소정은 세 줄 정도를 빠르게 떠 주더니 나에게 설명했다.
“이렇게 바늘을 훅 밀어 놓고, 실을 돌리는 거야. 리듬을 타면서 말이야.”
또 리듬! 저번에 배드민턴 칠 때도 리듬을 들먹이며 설명하더니. 얘는 왜 이렇게 리듬을 좋아하나 싶었다. 참, 스케이트보드 탈 때도 음악이 없는데 리듬을 타던 모습이 떠올랐다.
“스케이트보드 탈 때처럼?”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왔다. 이소정의 눈이 똥그래졌다. 유난히 가느다란 눈이 이렇게 동그래진 걸 처음 보았다. 내가 한 말에 나도 놀라 눈만 끔벅거렸다.
“어떻게 알았어?”
“그냥 우연히 봤어.”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내뱉었다. 왜 요즘은 안 보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꿀꺽 삼켰다. 이소정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에 눈이 똥그래질 땐 언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