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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정 Oct 28. 2024

좋아해도 괜찮아?

좋아해도 괜찮아? - 1화

하필이면 2학기 첫 번째 짝이 이소정이라니. 비극이 따로 없다. 시은이와 짝이 되게 해 달라는 간절한 바람은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아무래도 지난밤에 기도를 잘못했나 보다. 이소정과 짝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야 했다. 나는 뒤늦은 깨달음에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나란히 앉은 이소정과 나를 보고 아이들이 킥킥거렸다. 그럴 줄 알았다.
  내 별명은 백설기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피부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간혹 백설 공주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다. 백설기까지는 그러려니 하지만, 백설 공주는 해도 너무 하는 거다. 열두 살짜리 남자애한테 백설 공주라니. 백설 왕자도 아니고.


“백설 공주한테 숯깜정 묻을라, 좀 떨어져 앉아라!”


누군가의 말에 아이들이 와르르 웃어댔다.
‘숯깜정’은 이소정의 별명이다. 우리 반에서 제일 까무잡잡한 이소정과 제일 허여멀건 나 백승찬이 짝이 되었으니 볼만하겠지. 앞으로 한 달을 어찌 지내나 싶어 눈앞이 깜깜했다.


나는 일부러 이소정과 간격을 벌리고 앉았다. 흘깃 보니 이소정은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했다. 아이들이 뭐라 하든 이소정은 늘 반응이 없다. 그런 이소정이 나는 왠지 오싹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은 느닷없이 짝끼리 책상을 맞대고 앉으라고 했다.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책상을 돌려 짝끼리 마주 앉았다. 나의 짝 이소정이 눈을 끔벅거리며 내 앞에 있었다.


“앞에 있는 짝을 잘 관찰해 봐. 그리고 특징을 살려서 캐리커처를 그리는 거야. 캐리커처에서 중요한 건 깊이 있는 관찰을 통한 포인트 잡기거든. 그 사람만의 고유한 특징을 잡아내야 해. 알겠지?”


짝이 바뀌자마자 이런 그림을 그려야 하다니! 고문이 따로 없다.  


나는 슬며시 눈을 돌려 건너 자리에 앉은 주환이를 보았다. 예상대로 입이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환하게 빛나는 시은이가 주환이 앞에 앉아 있었다. 복 받은 녀석. 시은이를 내 스케치북에 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아이들도 내 마음과 같은지 흘깃흘깃 주환이와 시은이를 돌아보았다.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 이소정과 눈이 딱 마주쳤다. 이소정은 나를 대놓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뭘 봐?”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퉁명스레 말했다.


“관찰 중이야.”


할 말이 없었다. 관찰인지 뭔지를 하려면 이소정을 뚫어지게 쳐다봐야 하는데 눈이 자꾸 다른 곳으로 갔다. 이소정의 눈길이 레이저 광선처럼 내 얼굴 곳곳을 샅샅이 훑었다.


“그만 쳐다봐. 내 얼굴 구멍 나겠다.”


나는 괜히 쏘아붙였다. 문득 이소정이 내 얼굴을 관찰하며 그리는 것 자체도 마음에 안 들었다. 이소정은 대꾸 없이 연필로 쓱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나도 이소정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부스스한 단발머리에 숯깜정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만큼 까무잡잡한 얼굴. 희끄무레한 눈썹 아래 가늘고 긴 두 눈. 그리고 유난히 선명한 입술 선은 고집스러워 보였다.


도무지 스케치북에다 그리고 싶은 얼굴이 아니었다. 내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무심결에 나와 버린 한숨 소리에 이소정이 나를 쳐다보았다. 삼각자 모서리처럼 뾰족한 눈길이었다.   


나는 모른 척 고개를 숙이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스케치북에다 선을 그었다. 대충 동글납작한 얼굴선을 그리고, 그 안에 적당히 눈 코 입을 집어넣었다. 내키는 대로 죽죽 아무렇게나 사람 얼굴을 그렸다. 이소정의 특징 같은 건 전혀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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