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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정 Oct 28. 2024

좋아해도 괜찮아?

좋아해도 괜찮아? - 2화


“대충 그리면 안 돼. 애정 어린 관찰이 있어야 캐리커처가 살아나니까 유심히 보고 그리도록.”


아이들 그림을 둘러보며 다니던 선생님이 말했다. 마치 내 그림을 보기라도 한 듯이.


내 스케치북에 그려진 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이소정도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아니었다. 무슨 상관이람. 마음에 드는 얼굴이어야 애정을 담아 관찰하고 특징을 살려 그리지.


이소정은 고개를 숙인 채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간혹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기도 했다.


‘뭘 저리 열심히 그린담?’


이소정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내 얼굴이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눈에 띄는 하얀 피부에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다. 옷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가 대충 사 주는 대로 입지 않는다. 아빠는 사내 녀석이 지나치게 멋을 부린다고 혀를 차곤 했다. 하지만 난 아무렇게나 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소정처럼 말이다.


후줄근한 티셔츠와 바지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부스스한 단발머리도 꽝이다. 칙칙한 팥죽색 가방도 고개를 흔들게 한다. 뭐 하나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게 없다.   


“자, 어느 정도 완성됐지? 이제 그만 마무리해 봐.”


선생님이 손뼉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말했다. 마지막 방점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조금도 이소정 같지 않은 얼굴을 이소정 같게 만드는 단 한 가지 방법. 바로 그것이다.


2B 연필을 꺼내 동글납작한 얼굴에다 쓱쓱 칠을 했다. 최소한의 예의로 4B 연필은 사용하지 않았다. 2B 연필로 이소정의 얼굴색 특징을 표현했다. 그보다 더한 특징은 없으니 말이다.



오늘 체육 시간에는 배드민턴을 한다고 했다. 그것도 짝끼리. 으악, 고문의 연속이다.  


우리 반은 한 달에 한 번 짝을 바꾼다. 한 달 동안 짝끼리 하는 활동이 많다. 그러면서 서로 깊이 친해지라는 게 선생님 바람이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짝이랑 한 달 내내 뭔가를 같이하는 건 고역이다. 오늘만 해도 마주 보고 캐리커처를 그린 데다 배드민턴까지. 앞으로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걸 같이해야 할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이소정과 마주 섰다. 이소정이 친 셔틀콕이 내 앞으로 날아왔다. 나는 라켓을 휘둘러 시원하게 받아쳤다. 아니, 받아쳤다고 생각했다. 셔틀콕은 내 옆으로 툭 떨어졌다. 아, 짜증 나. 속으로 투덜대며 셔틀콕을 주웠다.  


나는 셔틀콕을 높이 쳐서 날려 보냈다. 방향이 빗나갔지만 이소정은 빠르게 달려가 받아쳤다. 이내 나한테로 넘어온 셔틀콕을 받아쳤다. 하지만 라켓의 모퉁이에 맞아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떨어졌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역시 이소정과는 호흡이 안 맞는다. 그만하고 싶다. 툴툴대며 둘러보니 모두 신나게 배드민턴을 하고 있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한숨을 쉬며 돌아보다 깜짝 놀랐다. 이소정이 내 옆에 와 있었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니 이소정이 라켓을 휘두르는 방법을 설명했다. 날아오는 방향을 주시하며 리듬에 맞게 정확하게 쳐야 한다나 뭐라나. 춤추는 것도 아닌데 리듬은 무슨 리듬? 콧방귀가 나왔다.


“됐어. 나도 알아. 바람 때문에 흔들려서 그런 거지.”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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