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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인정 Oct 28. 2024

좋아해도 괜찮아?

좋아해도 괜찮아? - 3화


“그럼 자리 바꿔서 해 볼까?”


이소정이 생각지 않은 말을 했다. 건너편 자리로 가는 게 귀찮았지만 내뱉은 말이 있어 순순히 움직였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는 것 외에는 달리 운동도 하지 않는다. 땀이 나는 것도 싫고 뭔가를 쫓아 달리는 것도 싫다. 그래서 축구도 농구도 야구도 다 즐기지 않는다.


셔틀콕을 라켓으로 쳐서 이소정에게로 보냈다. 이소정 앞으로 제대로 날아갔고, 이내 내게로 되돌아왔다.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받아쳤다.


‘그래, 이거지! 역시 바람 때문이었던 거야.’


핑계로 대충 둘러댄 거였는데 정말 그런 듯했다. 통, 하고 셔틀콕이 가볍게 튕겨 나가는 맛이 짜릿했다. 그 뒤로는 제법 여러 번 셔틀콕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다 이소정이 실수로 헛스윙을 했다.


“야! 똑바로 좀 받아쳐!”


나는 짜증을 벌컥 냈다. 사실은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보내 놓고선 방귀 뀐 놈이 성낸 꼴이었다. 초반에 못 친 창피함을 덮고 싶어 나도 모르게 큰소리쳤다. 그런데 이상하다. 셔틀콕을 줍느라 허리를 굽힌 이소정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왜 그러나 싶어 다가갔다.


“왜 그래?”


이소정이 발목을 붙잡고 얼굴을 찡그렸다.


“발목을 약간 삔 것 같아.”


나는 머쓱해졌다. 내가 잘못 날린 셔틀콕을 따라 뛰다가 발목을 삐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멀리서 본 선생님이 급히 다가왔다.


“왜? 소정이 다쳤어?”


“그냥 조금 삐끗했어요.”


이소정은 괜찮다는 듯 말했다. 선생님은 걱정스레 이소정의 발목을 살폈다.


“보건실 가서 응급조치 받아야 하는데 걸을 수 있겠어? 아니면 선생님이 업어 줄게.”


이소정은 걸어갈 수 있다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걸어 보았다.


“그럼 어서 가서 치료받아. 승찬이가 같이 가 주고. 응?”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이소정은 약간 절뚝거리며 천천히 걸었다. 나는 그 옆에서 주춤거리며 걸었다. 이소정의 느릿한 걸음에 보조를 맞추느라 곁눈질을 하면서.


보건 선생님은 이소정의 발목을 살피더니 찜질을 해 주고 진통제를 발라 주었다. 다행히 심하게 삔 건 아닌 것 같다며 그래도 꼭 병원에 가 보라고 당부했다.


“저기 누워서 체육 수업 끝날 때까지 좀 쉬어.”


이소정은 보건 선생님이 가리킨 침대로 가서 누웠다. 나는 뭘 해야 하나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소정이 그런 날 보며 말했다.


“백승찬, 난 괜찮으니까 수업하러 가.”


“가면 뭐 하냐. 혼자서 배드민턴도 못하는데.”


“아, 그러네. 미안해. 내가 괜히 다쳐서…”


이소정의 말에 나는 끔쩍 놀랐다. 뭔가 거꾸로 된 것 같다. 이소정이 잘못한 게 아니라 내가 셔틀콕을 잘못 날려서 그런 건데. 머쓱해진 나는 괜히 너스레를 떨었다.


“선생님, 저도 배드민턴 치느라 어깨가 뻐근해서요. 좀 누워서 쉬어도 되죠?”


내 말에 선생님과 이소정이 동시에 쿡 웃었다.


“그래, 좀 쉬다 가렴.”


선생님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금 떨어진 다른 침대에 누웠다. 난생처음 보건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니 이상했다. 그것도 이소정과 나란히 누운 채로. 어색한 기분에 나는 슬그머니 커튼을 끌어당겼다.


‘휴우, 괜히 누워 쉬겠다고 했나?’


나는 눈을 꼭 감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백승찬, 그만 일어나!”


가까이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여기가 네 방이야? 코까지 골면서 언제까지 잘 거야?”


놀라서 벌떡 일어나니 이소정이 눈앞에 서 있었다. 그새 잠이 든 모양이다. 서둘러 실내화를 꿰신는 내게 이소정이 말했다.


“점심시간 다 끝나가. 어서 급식실…”


“뭐? 왜 빨리 안 깨웠어?”


나는 애먼 이소정에게 왈칵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뛰다시피 급식실로 갔다.  
아이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급식실은 조용했다. 나는 남은 밥과 반찬을 식판에 퍼 담았다.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볶음이 얼마 남지 않아 박박 긁어 다 쓸어 담았다.


자리를 잡고 밥을 먹고 있는데 이소정이 급식실로 들어섰다.


‘참, 발목 다쳐서 빨리 못 걷지.’


그제야 혼자 달려온 게 미안했다.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고 있는데 이소정이 식판을 들고 맞은편에 와서 앉았다. 자리도 많은데 왜 굳이 앞에 앉는 건지 못마땅했다.


“짝끼리 같이 밥 먹어야 하잖아.”


이소정이 툭 내뱉었다.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오징어볶음이 없는 이소정의 식판이 허전했다. 조금이라도 나눠 줘야 하나 살짝 고민이 됐다. 하지만 이소정은 아랑곳없이 미역국에 밥을 말아 맛있게 먹었다. 나도 모른 척하고 오징어를 오물오물 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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