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추억이랄 것도 없는 할머니∙할아버지의 납골당을 명절 때가 되면 의무적으로 간다.
그리움도 슬픔도 없다 보니 부모님이 조부모님을 추모하는 동안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이제는 끝나버린 타인의 삶을 훔쳐본다.
납골함 하나 겨우 들어가는 네모난 공간에는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적을 공간 따윈 없다. 인심 쓴다는 듯이 사진 몇 장 놓을 정도만 허락한다. 그들의 삶은 우리 조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살다 간 연도와 이름만이 적혀있을 뿐이다.
1908년에 태어나 근현대사를 다 겪은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3년을 채 살지 못하고 떠난 아이도 있다. 납골당의 좌우 위아래를 훑으며 순식간에 다양한 죽음을 마주한다.
그리고 내가 뭐라고,
고작 연도만 보고 감히 그들의 삶을 추측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과 남겨진 가족을 속으로 위로한다. 특히 나이가 어리거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고인을 마주치면 유독 더 진심된 마음을 담는다.
그렇게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추모하다 보면 내 가족의 추모도 끝이 난다. "다음에 또 올게요", "이제 밥 먹으러 가자" 등의 이야기가 일련의 레퍼토리처럼 흘러나온다.
'이제 그만 오고 싶다'라는 불효막심한 생각을 하며 나가는 길에 추모 중인 다른 가족이 눈에 띈다. 그들이 기리는 분의 납골함은 가장 아래 단에 있다. 온 가족이 함을 보고 인사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다. 가장 윗 단에 함을 모신 가족은 고개를 한껏 들어야겠지.
하아...
내 집 하나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삶인데, 죽어서 얻는 창문 없는 납골함 조차 어느 위치냐에 따라 값이 다르게 매겨진다. 물론 당연한 이치지만, 이런 공간에서조차 물질적 가치로 등급이 나뉘는 것을 깨닫는 게 달갑지는 않다.
납골당에 들어설 때는
신선한 공기로 머리가 맑아졌다면
납골당을 나설 때는
머리가 복잡해져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납골당에서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너무 짧은 순간에 마주했나 보다.
그곳에 깃든 모두 평안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