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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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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Feb 28. 2024

동백冬柏의 선택

    

겨울은 하얀 캔버스에 붉은 한숨을 내뱉고 있었지

삶과 나란한 죽음이 고스란히 떨어지면

죽음 건너편에 마주한 새로운 생명의 몸부림이 있단 걸 알았지    

 

알싸한 붉음, 향기는 버린 지 오래

벌과 나비를 유혹하지 않으려

향기는 버렸다지, 아마

혹시, 어린 꽃들을 위한 희생

동박새를 매혹하기 위해선 더 많은 달콤함이 필요했을 거야

그러니까,

오묘한 붉음이 필요했을지도 몰라   

  

공기의 흔들림에도 붉음은 남달랐어

엄동설한은 바람의 칼날을 벼리고 벼려

고혹한 붉음을 다듬기 위해

잔병 같은 겨울 공기에도 진저리 치며

그렇게 가슴을 졸였지     


낙화의 시간을 준비하는 비장함

떨어질 결심은 언제나 진중했어

주저흔은 어디에도 없었지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장렬한 붉음

오직 절정의 순간에

몸을 던질 각오는 단호했어    

 

바람이 방향이 바뀌었지

동풍이 햇살의 빗장을 살포시 풀었어

미묘한 온도의 흔들림,

혹은 미세한 꽃잎의 흔들림,

목을 스치는 짜릿한 전율     

바스락 눈 발자국 소리에도 소스라쳤지


잘 벼려진 바람의 칼날은 예리했어

덜컹 잘린 모가지

예각으로 잘린 상처는 아프지가 않았어

직선으로 떨어짐은 고결한 붉음을 흩트리지 않았지  

   

툭!


땅에 부딪히는 둔탁한 진동

바닥임을 인지하는 혼절

꽃잎조차 흔들리지 않는 상큼 현기증     

떨어짐은 또 다른 삶의 의미

낙화 이후의 삶이 더 처연했


뭇 발자국에 짓밟혀도 붉음은 옅어지질 않았어

목적을 이룬 후 욕심은 의미가 없는 것,

새들의 발길을 남은 꽃들에 배려했어

떨어진 꽃은 더 이상 찾지 않음은 이미 알고 있었어  

  

붉은 혓바닥은 겨울을 핥을 수 있지

계절이 꽃을 피우는 시절은 지났어

꽃이 계절 속으로 거슬러 들어가는 것이지

동백은 겨울을 벗고 봄을 입는 것이지

봄에서 겨울의 종족을 보살피는 일인 게지   

  

주검은 찬란했어

하얀 눈밭 속을 견뎌내는 붉은 속살들

빠른 낙화가 더 빠른 망각을 일으키는 진실은 알아챘을까    

 

툭, 투둑!

가슴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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