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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계절 단상

꽃 댕강 떨어지던 밤

by 아이언캐슬


1

꽃들이 아직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끌어들인 것은 거만한 손과 목소리

그믐달의 어둑발을 꿰뚫은 신음이 내 귀를 관통하였고

구름의 마음은 헤부치는 물결처럼 술렁였습니다

까막별의 향기가 까마득한 언덕을 건너오곤 하였지만

달을 향하던 내 목소리가 찢어지게 가난해졌고

달아오른 체온만큼 울분을 삼켰습니다

꽃댕강의 미소가 꿈틀꿈틀 일어서곤 했습니다


2

달력에는 촉박한 시간이 덕지덕지 붙어있습니다

쉽사리 넘겨지지 않는 어느 시간의 한 페이지처럼

달그림자에 감춰둔 비밀을 들키자

꼭 다문 입술에 갇혀버린 침묵이 고양이 손톱처럼 애달픕니다

밤 호수 속 물고기는 언제 바다로 나갈 수 있을까요

물속으로 댕강 뛰어들던 꽃을 데려갈 수 있을까요

나지막이 날고 있는 새들은 집으로 갈 수 있을까요

탈색된 머리카락은 매일 한 움큼씩 고민을 쏟아내지만

입과 눈 사이의 길은 없어지고

손과 목소리 사이에서 부당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3

잠을 깬 곳은 밤 호수의 그림자 속

물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앞자리와 뒷자리가 서로 엉겨 붙어

내 정강이 위에서 신음을 토했고

하얀 피 흘리던 꽃들이 그믐달 뒤로 숨었습니다

끈적거리는 밤 소리는 깊어 갔지만

별들도 더는 불을 켜지 않았습니다

검은 공기가 물을 덮었지만 물속은 환해졌습니다

물속 꽃의 댕강이 윤슬처럼 흘러 다녔고

물고기는 윤슬을 물어 날랐습니다


4

꿈이 배송됩니다

한쪽 모서리가 댕강 잘린 각진 상자는

누가 받더라도 새벽 3시는 반송 불가입니다

비록 깨어나지 않더라도 꿈은 수용해야 합니다

반쯤 자수를 놓아 집요해진 새벽을 베고 잠들어야 하는 불면증

댕가당한 꽃받침을 위로하던 아이는

꿈속에서도 몇 달은 더 가지를 딛고 서 있어야 합니다

고집스레 밝아오는 아침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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