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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머리카락의 기억

by 아이언캐슬


그날,

비는 조용히 쏟아졌고
너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젖은 머리카락을 가볍게 쥐었다


물기를 머금은 머리칼 끝
너의 손끝이 머물던 그곳에서
그 짧은 접촉 안에
오래 묻혀 있던 떨림이
숨도 쉬기 전에 깨어났다

차가운 빗물이 뺨을 타고 흐르던 순간
머리카락 사이로 너의 체온이 스며들었다

온기와 냉기가
한 몸 안에서 뒤섞이며
심장을 조용히 뒤흔들었다

너의 손은 말보다 느렸고
나는 그 느림보다 더 조용히 떨렸다
머리카락 한 올에 담긴 체온이
내 안 가장 깊은 방을 두드렸다


지금도 비가 내리면
나는 무심코 손을 들어
젖은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내린다

그 감촉은 아직 살아 있고
그날의 순간은
비처럼 내 안 어딘가에 쌓여 있다


젖은 머리카락 하나가

어느새, 그날의 길목으로
나를 다시 데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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