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 9길 10번지를 서식지로 정하다

(씨앤하우스)

by 아이언캐슬

조천 일기


해안가 바위너설을 따라

검은 뿌다구니가 뾰루지처럼 돋아있다

뿌다구니를 밟을 때마다

직박구리 울음이

오래된 메트로놈 소리처럼 정겹다

조천 9 길 10 번지를 서식지로 정하다


2023.10.18. 씨앤하우스


나의 일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절친인 셈이다. 가끔씩 내가 좋아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지면 일과 타협해서 잠깐만 내려놓으면 금방 일과 다시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잠깐'이라는 시간의 의미는 어떻게 정할 것인가. 일을 좋아하는 나의 감정(주관적인 행복감)과 일로 인해 누적된 압력(객관적인 육체적 손상, 심리적 소실)에 의해서 '잠깐'이 저울질될 것이다.

이 잠깐의 시간을 내기란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는 않다. 쉽지 않은 것이지 불가능하지는 않다. 대부분 '일을 잠시라도 놓으면 안 되는 상황들도 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상황이라도 잠깐은 얻을 수 있다. 물론 잠깐의 길이는 다를 수 있겠지만. 잠깐은 한 시간이 될 수도, 일 년이 될 수도 있다. 이제껏 나는 단 한 시간의 잠깐도 안 되는 줄 알았다. 그동안 누적된 일의 무게가 이번엔 두 달의 '잠깐'을 허락했다.


조천을 서식지로 정했다. 제주시 조천읍 조천 9 길 10 번지. 조천은 제주도에서는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다. 해서 여러 가지 전설들도 많다. 전설이 많다는 것은 알고 보면 그만큼 애한이 많다는 의미다. 그중 하나가 연북정이다. 연북정戀北亭, 말 그대로 북쪽을 사모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조선 선조 임금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양에서 좌천된 관리나 제주도로 유배온 선비들이 임금을 그리워하며 북쪽으로 배례拜禮를 하였다. 해서 그리 이름을 지었다 한다.


한참을 정자 그늘에서 북쪽 바다를 쳐다보니, 문득 스치는 생각. 아무래도 관에서 지은 곳인데, 죄인인 유배온 사람이 어떻게 쉽사리 출입을 할 수 있었을까? 하기사 나라님께 죽을죄를 지은 연유가 아니라면 유배를 오더라도 하인과 풍류를 함께 데려오는 경우가 많다 하니 오히려 유배라기보다는 일종의 안식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도 '잠깐'이었을까? 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간 분들도 많으니 그이들에겐 이 유배 기간이 결과적으로 '잠깐'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 '잠깐'의 시간이 그들에게 역사적으로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킨 찰나를 제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말에 연북정에서 <연북정 풍류>라는 특별 퓨전 국악 공연이 있다 하니 다시 들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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