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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Dec 30. 2020

얼굴이 어쩐다?


1982년 모교 백일장 대회 산문부 특선 작품임(상장과 상품으로 노트 2권 받음)


얼굴


누렇게 물들어진 들녘이 농부들의 손에 손에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이 가을에 생각나는 이의 모습을 그려본다. 무엇보다도 말 없는 가운데 따뜻한 사랑을 내게 전해주시는 어머니, 오십여 년의 세월을 지내오시며 수많은 고난과 번뇌는 얼굴 가득히에 곡선을 그려 놓으셨고, 이제는 새까만 얼굴에 모든 것을 포유 할 근엄함을 간직하신 채 오늘도 일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신다. 모든 피로함이나 괴로움도 없는 것처럼 들로 나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책가방을 든 나로 하여금 뭔가 깨닫고 새로운 결심을 갖도록 일깨워주신다. 수업 시간이면 헛생각, 헛짓, 또는 친구들과의 비밀 이야기로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나로서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해 주시면서 낯 동안 배고플 것을 생각하여 마련해 두었던 단감이며 찐 밤을 나의 방으로 밀어 넣어주시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난 무엇을 찾았는가?  검게 그을린 어머니의 얼굴에 두 줄기 눈물이 흐를 때 그 이유를 몰라 한참 동안이나 생각하던 어리석기 짝이 없었던 나는 이 소중한 가을에 어머니의 얼굴을 꼭 한 번 그리고 싶은 것이다.



가장이나 꾸밈, 거짓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 나의 어머니시다. 까칠하신 피부에 눈은 쑤욱 들어갔고 얇은 눈꺼풀은 갸름하게 떠서 눈망울을 지켜주고, 앞니는 텅 비어 마치 할머니와도 같은 어머니의 얼굴은 나에게 있어 가장 다정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시집을 오신 후로는 할머니를 모시느라 주장 한 번 내세우지 못하고 묵연히 살아오다가 우리들을 자라게 하셨지만 자식들은 따뜻한 보살핌을 모르고 한사코 어머니 곁을 떠나 먼 타향으로 나가니 이렇게 가을이 되어 추석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보고 싶음에 견딜 수 없는 서글픔을 느끼시는가 보다. 몇 년 동안 집에 오지 않는 언니를 명절이면 동네 언덕에 혼자 오르시어 찻길을 바라보며 기다리셨으나 그때마다 언니는 야속하게 바쁘다는 이유로 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명절에는 꼭 오겠다는 언니의 편지를 받고 기뻐하시던 어머니, 이런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 난 결코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내 일기장에 기록하곤 한다.




모두들 잠든 조용한 밤!  시계 소리의 똑딱거림만이 나의 심금에 와 닿을 때 내 옆자리에 반듯이 누워있는 어머니를 무심코 발견하고 조용히 바라본다. 고생을 낙으로 살아오신 어머니 얼굴이 나를 향해 약간의 미소와 함께 전율이 전해올 때 난 뜨거워옴을 느낀다. 이토록 고달픔 속에서도 희망과 보람으로 하루를 맺어가고 있는 어머니 얼굴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위대한 얼굴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얼굴이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얼굴이 아닐까?




삶을 가르치시듯 다소곳하면서도 굳건하게 지켜오신 진실된 모습. 그것은 오십여 년의 세월을 한 얼굴에 수용하신 채 또 앞으로도 몇십 년의 시간 동안 간직하실 얼굴이며 나의 영원한 얼굴인 것이다. 참신하고 신선한 가을 햇살이 감의 볼에 비칠 때 나는 잊히지 않는,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그려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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