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직장에서 벌써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가을이다. 회사 주차장에는 건물 2층 높이 정도 되는 꽤 큰 은행나무가 여러 그루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잘 보이는 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매 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무실에서 정문 방향을 방향으로 중앙 통로가 있고, 통로 양쪽으로 은행나무가 다섯 그루씩 심어져 있다. 가장 왼쪽에 있는 은행나무 세 그루는 2021년 11월 11일 현재 노랗게 물든 잎이 반 이상 떨어져 있다. 중앙 통로 오른쪽 은행나무 다섯 그루 중 가장 왼편에 있는 나무는 샛노란색 은행잎이 가득이고, 그 옆 나무는 반은 노란색, 반은 초록색이다. 그리고 그 옆 나무는 아직 푸르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시간이 지나 옆 나무들이 다 색을 바꾸고, 잎을 떨구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을 때 이 나무 혼자만 풍성한 잎을 자랑하며 위엄 있게 서 있었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바로 옆에 있는 나무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그렇다고,
- 아, 주변 나무들은 다 단풍이 들고 떨어지는데, 11월 11일에는 노랗게 물들어야지. 왜 이렇게 느려? 멍청한 나무구나, 능력이 없구나
하지 않는다. 적은 차이라도 햇빛의 양을 달리 받았거나, 심은 시기가 다르거나 품종이 다르다거나 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냥 제 속도대로 물들고 제 속도에 맞춰지는구나 할 뿐이다. 오히려 늦게 물든 나무 덕에 오래오래 노란 은행잎을 볼 수 있어 좋다.
이런 자연의 이치를 잘 알고 있지만 사람에게 적용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취업 시기, 결혼시기, 자녀를 낳을 시기 등을 정해두고 그 시기에서 조금 벗어나면 불안해하고, 가족의 걱정거리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연예인 송은이·김숙이 량송량숙이라는 부캐로 량현량하의 '학교를 안 갔어'를 패러디한 '시집을 안 갔어'라는 노래를 부르는 걸 본 적 있다. 재미있는 콘셉트와 가사에 노래는 또 왜 그렇게 잘 부르는지 깔깔거리며 보았다. 센스 있고 유머러스하게 풀었지만 근본에는 흔히 '결혼 적령기'라 부르는 시기를 지난 여성이 '결혼 안 한 게 왜?'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결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쉰 살에 할 수도 있는데 너무 주어진 틀에 맞춰서 스스로를, 주변 사람을 옥죄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은행나무처럼 그냥 제 속도가 있으려니 해주면 안 될까.
홍경자, 빈 그릇 하나
이 세상에 태어나며
받아든
보이지 않는 빈 그릇 하나
이마에 땀 흘려 물 주고 잡초 뽑으며
자신만의 색깔과 향과 모양으로
정성껏 멋스럽게 가꾸어가는 인생살이
깡충거리는 토끼
엉금거리는 거북이 부러워 않고
자신의 속도를 즐기며 채워가야 하는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