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야 Nov 26. 2021

11월의 낙방과 위로기

 올 한 해 셀 수 없는 낙방을 경험했다. 우선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의 계약 만료일이 올해 12월 31일이므로, 연초부터 지금까지 한 달에 1-2건은 입사지원서를 썼다(많은 달에는 3개도 썼다). 입사지원서라는 게 참, 내 영혼을 갉아먹는다. 매 번 영혼을 갈아 넣어 써서 그런 걸까? 하나 쓰고 나면 시원하면서도 진이 빠진다. 서류 발표일에는 일찍 발표가 날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새로고침 버튼을 끊임없이 누른다. 자소서를 쓰기 위해 회사에 대해 공부하며 이미 내 회사 같은 내적 친밀감을 혼자 쌓아버렸다. '합격할지도 몰라'였다가, '합격일 거야' 였다가, 문이 닫힌다. 지난달에 지원했던 한 기관의 1차 지원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무려 14가지였다. 이력서, 자기소개서, 직무수행계획서, 건강보험자격득실 확인서, 경력증명서, 주민등록 초본 등등.. 그래서 체크표를 따로 작성해 응시원서와 함께 보내야 했다.


 자기소개서는 소재와 경험에 한계가 있다 보니 어느 정도 수정하는 범위에서 복붙이 가능하다. 그런데 직무수행계획서는 정말이지... 몇 날 며칠을 꼬박 그것에만 매달려야 한다. 회사와 직무에 대해 공부하고, 회사와 업계의 최근 이슈를 파악하고 그걸 내 직무에 녹여 계획서를 짧게는 2p에서 길게는 10p까지 써야 한다. 지원자에게는 이렇게 많이 쓰라고 하면서 채용공고 수행업무란에는  왜 내가 할 일에 대한 설명이 한 두줄밖에 없는지. 


 면접에서 한 번은 채용공고에 적힌 수행업무대로 작성한 직무수행서를 본 면접관이 "무슨 일 하는 줄도 모르고 왔어요? A 업무 안 하는데? B 할 사람 뽑아요"라고 나무란 적도 있다. 의아해서 면접 후 채용공고를 보니 수행업무에 A 업무라 쓰여 있고, 채용공고 어디에도 B 업무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어떤 업무 할 사람 뽑는지도 안 보고 오셨어요?" 혹은 "채용계획서는 보고 면접관으로 앉아계시는 건가요?"라고 면접장에서 나에게 무안을 주었던 면접관에게 반문하고 싶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외부 위원이었고, 본인도 회사와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다이어리에 빼곡하게 적힌 지원서 마감일, 필기시험일, 면접일에 모두 X 표시를 하고, 올해 연가는 시험공부에 다 썼는데도 그 어떤 좋은 결과도 얻지 못했다. 계약 만료일 전에 멋지게 나가는 게 목표였는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상사에게 뭐라고 말하며 퇴사를 이야기할까 혼자 상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계약 만료가 다가오고 있다. 함께 입사한 계약직 동료 여섯명 중 계약 만료일까지 남은 사람은 셋이라고 한다. 이걸 참... 끈기와 성실함을 가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이직할 능력이 부족했다는 게 팩트라 가슴이 시리다.


 두 번째 낙방은 에세이다. 올해 초 가볍게 참가한 공모전에서 수상하면서 자신감을 얻어 온갖 에세이 공모전에 지원했었다. 그중 한 공모전에서는 1차에 통과하여 2차로 대국민 투표를 했는데, 딱히 주변에 홍보하지는 않았다.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1차를 통과한 20개의 작품 중 6개의 작품이 수상했는데 그 여섯 안에 들지 못했다. 나름 집중하려고 주말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스터디 카페에 가서 쓴 작품들인데 결국 연초의 참가상 이후 성과는 없다. 요즘은 브런치도 있고, 1인 출판도 많이 하는 추세라 N잡러로서의 작가가 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도 산출된 결과는 '탈락'. 차라리 인생이 수식이었으면 좋겠다. 1만큼 더하면 1만큼 늘어나고, A를 넣으면 f(A)의 값이 도출되는 함수라면 내 낙방의 이유라도 알 수 있을 텐데. 얼마 전, 우연히 읽은 두 편의 시가 내 심금을 울렸다. 첫 번째 시는 헤르만 헤세의 '편집부에서 온 편지'다.


헤르만 헤세, 편집부에서 온 편지


‘귀하의 감동적인 시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의 옥고는 우리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지면에는 약간 어울리지 않음을

무척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편집부에서 오는 이런 거절 편지가

거의 매일 날아온다. 문학잡지마다 등을 돌린다.

가을 내음이 풍겨 오지만, 이 보잘것없는 아들은

어디에도 고향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목적 없이 혼자만을 위한 시를 써서

머리맡 탁자에 놓인 램프에게 읽어 준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마지막 구절이 압권이다. '아마 램프도 내 시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말없이 빛을 보내준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뼈 아픈 좌절에도 작품을 쓰고, 무생물체인 램프에게 의지하는 심정이라니.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로 시작하는 문장을 내 얼마나 숱하게 대면해왔던가.


 두 번째 시는 조선 중기 문인 김득신의 시다. 김득신은 공부한 것을 금방 잊어 아버지가 공부를 그만하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고 하지만 공부를 멈추지 않았고,『사기(史記)』 는 십 수만 번을 읽었다고 스스로 밝힌다. 39세가 되어서야 소과인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59세란 늦은 나이에 대과에 합격하여 조선시대 끈기와 노력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아래의 시는 그가 향시 낙방 후 집에 가는 길에 지은 시다.


김득신(金得臣, 1604~1684), 『백곡집(柏谷集)』 4책 「공산을 지나는 도중에 – 과거에 떨어진 후 지었다[公山途中 - 下第後作]」


올해의 실패에 마음이 놀라

쓸쓸한 객관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네

계룡산 겹겹 구름에 산의 푸른 빛이 묻혔고

금강의 층층 파도에 차가운 소리가 울리네

온갖 마귀 나를 괴롭혀 내 운명이 궁해지고

모든 일이 어그러져 이번 삶이 개탄스럽네

북쪽으로 집을 향해 겨우 눈길 보내는데

저물녘 비바람에 돌아가는 길이 어둑하네

썩은 선비 과거에 떨어져 정신이 놀라고

출세를 기약했건만 또 이루지 못했네

계룡산에는 낙엽 시들어 바위가 보이고

웅진(熊津)에는 바람 급해 파도 소리가 철썩인다

주머니 속의 시초는 천 편이나 많은데

거울 보니 센털이 양 살쩍에 돋아났네

여윈 말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 발만 구르더니

황혼에서야 목주(木州)로 가는 길에 오른다네


출처-한국고전번역원

https://www.itkc.or.kr/bbs/boardView.do?id=75&bIdx=35000&page=1&menuId=10063&bc=0


 헤르만 헤세와 김득신   인물이 실패와 좌절을 겪은   글을 보며 위안을 받기도 했고,  실패 따위가 무엇이라고 이리 자괴감과 절망에 빠져 있나 반성하게 된다. 학창 시절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업으로 삼을 만큼의 재능은 없다는 것을 진작  나는 대학 졸업  취업 준비에만 매진했다. 그러다가 에세이를 혼자 끄적거리며 쓰기 시작한  그간의 실패와 직장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심한 우울감과 좌절에 빠져 있을 때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는 마음으로, 살기 위해 쓰기 시작한 에세이였는데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던가. 글이  슬픔의 반을 가져가  것일까? 글이라도 쓰니 마음이 한결 편해져 계속 글을 쓰고, 욕심  브런치에도 업로드하고 있다. 그래. 실패가 대수냐. 실패하고 슬프면  실패했다고 징징거리는 글을 쓰고  쓰다 보면  100년쯤 후에는  에세이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매거진의 이전글 제 속도가 있겠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