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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Apr 15. 2022

직업이란 무엇인가

 요즘 '떡제조기능사 자격증반'에 등록해 주말마다 떡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무려 경력이 40년이 넘은 원장 선생님 직강이다. 선생님이 수업 중 수강생들에게 왜 떡을 배우냐고 질문했다. 다들 서먹하게 웃을 뿐 대답이 없자 자신의 일화를 들려주셨다.


 선생님이 오래전 떡 제조 관련 워크숍에 참석했는데 왜 이 일을 하냐는 강사의 질문을 받고 "배운 게 이것뿐이니 하지요."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질문을 한 강사가 왜 자신을 슬프게 만드냐고, 기왕 하는 거 후배 양성도 하고 전통문화 계승도 하고 얼마나 값진 일인데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라고 했다고. 그 말을 듣고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는 '먹고살려고 하지. 칫' 했다는 원장님의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되기도, 안심되기도, 귀엽기도 했다.


 한 번은 전문경찰관으로서 일일 강연 진행하는 경찰관을 만난 일이 있었다. 과학수사분야 전문가인 그는 일 이야기를 할 때 생기가 돌았다. 세 시간 정도 진행된 강연에서 참석자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단답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례를 들고,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고, 생각을 나누는 자세가 참 멋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경찰관들은 승진에 대한 압박이 심하지는 않냐고 물었다. 그가 생각지 못한 답변을 했다. 본인은 '승진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현장 업무가 무척 마음에 드는데, 승진하면 관리자급이 되어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지금 하는 일을 지속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승진을 하지 않아도 되니 10년 정도 남은 퇴직 때까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놀라웠다. 아니, 충격적이었다. 자신의 직업을 저렇게 좋아하고 열정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을 실제로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승진을 거부할 만큼. 휴일도 일정치 않고, 지방 출장을 밥 먹듯 하는 일,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든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존경스럽다. 그런 자세로 업무에 임하니 빠르게 전문성을 갖추고 업무 성과를 쌓아 직장 내에서, 사회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감히 그처럼 되겠다는 다짐을 하지는 못하겠다. 내게는 그가 유니콘처럼 느껴진다.


 그렇다면 나에게 직업은 무엇인가. 월급날을 맞아 통장 잔고를 확인한 동료와 우스갯소리로 '회사가 끔찍하게 징그러운 만큼 월급이 귀여워져서 세상의 균형이 맞는다'느니,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따위 하지 않도록 진화했어야 한다'느니 따위의 농담을 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래도  선생님과 같은 마음이다. 먹고살려고 하는 일이지. 하지만 그게 다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영미권에서는 직업에서 유래된 성씨가 많다. Baker, Smith, Shepherd, Potter, Barber, Copper, Mason... 직업이 얼마나 중요하면 대대로 성씨가 되었을까 생각하니 직업은 '단순히 밥을 먹기 위해 하는 일 이상의 가치가 있구나'하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직업은 무엇일까. 도대체 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는 직업은 자아를 실현하고 소득의 수단이 된다고 적혀있었다. 선생님은 중요한 내용이라 시험 문제에 나온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분홍색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 두었지만 너무 쉬운 내용이라 다시 공부하지 않아도 단번에 오지선다에서 답을 고를 수 있었다. 학창 시절 그렇게 쉽게 넘어가 버린 직업이라는 문제가 30대가 되어서도 나를 괴롭게 한다.


 중학교 3학년 때였던가. 직업에 대한 글짓기 대회가 있었다. 나는 그때도 명확히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는 아이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스스로 정말 못 썼다고 생각했는데 진로에 대해 다방면으로 고민하는 태도가 재미있었다는 심사평과 함께 수상했던 적이 있다. 특기도 없고 장기도 없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몰라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꼴이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방황이 귀엽고 아름다운 청소년이었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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